▲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오늘날 많은 여성의 고발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 찢어지는 감정이라기보다, 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물리적인 소스라침에 가깝다. 그 몸들의 비명으로 온 세계가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 그 환멸과 피로에 휘청이는 것.”(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중)

잘 참고 버티다가도 어느 순간 고삐를 놓아 버리는 때가 있다. 늘 있던 흔한 회식 자리였다. 예약된 식당 방 안에서의 자리 배치와 선정에 눈치싸움이 치열하던 때, 신발을 벗으며 방을 흘깃 보니 귀신 같은 타이밍 덕에 잘 피해 앉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가장 어린 여성동료가 그 자리에 앉도록 분위기가 우르르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모두가 피하던 그 자리로 나도 모르게 가서 앉아 버린 적이 있다. 이후 시간은 예상대로다. 주로는 먹느라 못 들은척 하기, 화제 바꾸기, 잠깐의 정색과 약간의 언성 높이기 등으로 시간을 때우고는 자연스럽게 화장실 가는 척 빠져나와 귀갓길에 귀를 씻는다. 그래 봤자 대부분의 날은 내가 피하는데 급급할 뿐 누가 그 자리에 앉는지, 2차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내 눈 앞의 장면을 치우고 내 귀를 막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니까.

그렇게 시간과 시간들을 건너왔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보람과 성취에 집중하며, 일을 둘러싼 다른 대부분의 것을 힘껏 삼키며 경력을 쌓았다. 그날보다는 조금 더 자주 정색하고 조금 더 길게 언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그게 전부다. ‘우리’는 피하지 못했고 내내 목격하며 피로했다.

그저 피할 곳은 정말 없을까.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실시한 2021년 수습·소속 변호사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12.8%, 여성 변호사의 경우 21.9%가 상급자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구체적 피해사례를 보면 각종 유형의 스토킹,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범죄를 망라한다. 그 외에도 임금 차별과 업무 배당시 차별, 의뢰인으로부터의 성희롱 등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20~30%에 달한다. 이전에 다른 조사들도 있었지만 비슷하거나 더한 결과다. 법률 지식도, 절차도 익숙한 전문가 직역이지만 문제제기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허술한 제도에서 무엇이 닥쳐올지 너무 잘 알아서, 개인은 숨죽이기 쉬운 구조다. 피할 곳은 없다.

위 책에서 저자는 “동시대인이라는 말의 가장 적합한 정의란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며, 한 철학자의 말을 빌려 “한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생각과 그 존재를 말살해 버리는 행위의 실천 사이는 무섭도록 가깝다”고 했다. 우리는 노동과 생활의 일상에서 때때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표적이 되고, 노동자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며, 빈번하게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지켜본다. 살아남은 이들은 그렇게 동시대인이 된다.

동시대인의 목소리가 한데 모여야 한다. 상급자나 동료 노동자에 의한 가해행위로 다른 노동자가 피해를 겪는 경우 이는 단순히 범죄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그 가해행위는 일터가 품은 하나의 위험이다. 일터 내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현실화로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즉 사업주는 그 위험을 사전에 인지해 통제하거나 최소화할 의무가 있다. 노동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가해행위를 조장하고 묵인하는 조직문화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신속하고 엄중한 절차의 실행을 담보해야 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면하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일하는 등 위험 대응이 필요한 업무에는 충분한 안전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마지못해 실시하는(척 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현실과 유리된 말들로 채워진 매뉴얼 비치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누군가 생명을 잃거나 피해가 널리 알려지고 나서야, 이제야 알았다는 듯 놀라는 척해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숱한 날들을 버텨 온 이들에게 미안하게도, 당신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일터는 없다. 어쩌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고 버틴 만큼, 딱 그만큼씩 겨우 안전해진다. 우리의 짧은 생에서 무언가 나아간 것을 겪었다면, 고단하지만 끝내 놓지 않았던 많은 이들의 앞선 수고와 연대로 이뤄낸 것이다. 일터와 사회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뒤틀린 권력관계에 무지하고 젠더폭력의 위험성에 둔감한 공권력과 법원이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그러니 부디 삶에서도 일터에서도 물러나지 말길. 비록 때로는 당당하게 고개 들고 싸우지 못 할지라도, 손잡아 줄 한두 사람 곁에 두고, 정색하고 언성을 높이고 뿌리치며 남아 있길. 일상을 붙잡고 일터를 채우자. 시간이 우리 편이 되도록, 목소리를 울리며 시대를 점령하자.

더 이상 어떤 일상의 공간도 죽음과 폭력의 장소로 호명되지 않기를 바라며, 끝까지 노동의 일상을 놓지 않았던 용감한 동료 여성노동자의 마지막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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