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대상판결 :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22두45234 판결

1. 사건의 경위

이 사건의 재해자인 망 A(이하 ‘망인’)는 2018년 7월16일 차량을 운전하던 중 황색실선의 중앙선을 침범했고, 마침 반대편 차로에서 직전하던 차량 2대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이하 ‘이 사건 사고’). 망인은 이 사건 사고로 사망하였다.

이에 망인의 유족인 B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이 사건 사고가 범죄행위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37조2항에 따라 유족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취지의 거부처분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을 피고로 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그 청구를 인용했고, 피고가 항소·상고했으나 각 항소기각·심리불속행기각됐다.

2. 판결 취지

1심의 판결 취지는 경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라는 이유로 보험의 본질인 우연성이 상실된다고 볼 수 없고 다른 사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도 그 책임의 정도를 고의·중과실로 제한하고 있으며, 증명책임의 원칙상 범죄행위의 여부는 피고가 증명해야 하므로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항소심은 원심의 판결 인용에 더해, 이 사건 사고를 오로지 망인의 주의의무위반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마찬가지로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봤다.

3. 범죄행위의 범위

행정청은 우리 대법원이 과거 ‘고의적인 범죄행위는 물론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도 모두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 포함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는 점을 들면서 경과실에 기한 범죄행위도 보험급여의 지급제한 사유에 포함한다고 항변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나 이미 여러 항소심 판결에서 산재보험법상의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로서의 범죄행위에 경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된 바 있다(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9두33835 판결,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1두33845 판결 등). 대상판결도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연혁적으로, 과거 대법원은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 전부를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 포함시키면서도 ‘오로지 또는 주로’ 해당 재해자의 과실로 발생하지 않은 범죄행위의 경우에는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조화를 꾀했다. 그런데 과거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될 당시 국민건강보험법을 비롯한 여러 사회보장법에서는 보험급여의 지급제한 사유를 단순히 ‘범죄행위’라고만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산재보험법과 유사한 법률, 즉 국민건강보험법·공무원 재해보상법 및 이를 준용하는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사학연금법), 군인 재해보상법 모두 범죄행위의 전제로서의 책임요소를 “고의 또는 중과실 등”이라고 명시해 경과실을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서 배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국민건강보험법의 전신인 구 국민의료보험법의 ‘범죄행위’ 규정에 경과실이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경우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하면서(헌법재판소 2003. 12. 18. 선고 2002헌바1), 결정의 취지에 따라 경과실에 기한 범죄행위는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서 제외되도록 법률이 개정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보험 및 재해보상이라는 점에서 산재보험법에 국민건강보험법, 공무원 재해보상법,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사학연금법), 군인 재해보상법과 다른 법리가 적용될 이유가 없음에도 산재보험법만 명시적으로 경과실을 범죄행위에서 제외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입법적 공백이라 아니할 수 없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여러 판결과 같이 대상판결은 산재보험법의 경우에도 경과실에 기한 범죄행위는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서 배제하고 있는바, 법률의 흠결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타당하다.

또한 ‘오로지 또는 주로’의 법리는 태생적으로 위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 및 법률개정 이전 대법원의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도 모두 포함’에 부차하는 법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과실에 기한 범죄행위는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서 배제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오로지 또는 주로’의 법리는 사용되지 않도록 함이 연혁적이고 체계적인 해석론일 것이다.

4. 증명책임의 소재

이 사건에 적용되는 행정소송법은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므로(행정소송법 8조2항), 행정소송의 본질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민사소송의 법리가 적용된다. 이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일관되게 “항고소송의 경우에는 그 특성에 따라 당해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피고에게 그 적법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 할 것인 바 피고가 주장하는 당해 처분의 적법성이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일응의 입증이 있는 경우에는 그 처분은 정당하다 할 것”이라고 판시해 오고 있다(대법원 1984. 7. 24. 선고 84누124 판결 등 다수의 판결).

나아가 민사소송에서의 증명책임은 법률요건분류설에 따르므로, 권리장애사실·권리소멸사실·권리저지사실은 권리의 발생을 부정하는 자가 증명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의 권리는 ‘원고가 산재보험급여를 수급할 권리’이고, 권리근거사실은 산재보험법 37조1항 본문 각호에 따르는 사실이 된다. 반면에 산재보험법 37조2항은 원고의 산재보험급여에 대한 권리를 근거 짓는 사실이 아니므로, 민사소송법상으로도 피고에게 증명책임이 있다.

이 사건 사고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항고소송의 특성에 따르든, 행정소송법에 의해 준용되는 민사소송법을 참조하든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에 증명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으로서 이러한 판결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앞서 서술한 내용과 종합해 보면 산재보험법 37조2항 적용 여부가 문제되는 항고소송에서 근로복지공단이 그 처분의 전제인 재해가 산재보험법상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기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일응의 증명을 하지 아니한 이상, 그 처분은 취소돼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5. 결어

가. 산재보험법의 법문이 명백히 경과실에 기한 범죄행위를 보험급여 지급제한 사유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입법적인 공백 내지는 지연으로 생각되며,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법흠결에 대한 사법적인 보충이 필요할 것이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필요성에 적절히 응답했다고 생각된다.

나. 법적인 절차에는 해당 절차에 특유한 증명책임이 적용되는 것이나, 법적인 절차라고 해서 사회적·상식적인 결론에 반하도록 구성될 수는 없다. 범죄행위의 증명책임을 재해자측에 묻는다면 이는 스스로의 행위가 범죄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바, 상식적으로는 물론 법체계적으로도 올바른 결론이라 볼 수 없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볼 때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6. 보론

가. 교통사고처리법상의 이른바 ‘12대 중과실’에 대해

주된 쟁점은 아니었으나, 이 사건을 비롯한 여러 사건에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 각호의 사유, 이른바 ‘12대 중과실’에 해당한다는 사유가 있다는 점만으로 재해자에게 중과실이 있다고 평가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이 사건과 같은 범죄행위 사건에서 흔히 언급되는 이른바 ‘12대 중과실’에서의 ‘중과실’은 법률적인 의미에서의 중과실이 아님에도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법률영역에 동일하게 사용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12대 중과실’을 정하는 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 단서 각호는 법률적인 책임요소로서의 과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불구가 되거나 사망한 경우와 같이 원칙적 반의사불벌죄인 교통사고처리법 위반(치상)죄를 반의사불벌죄로 하지 않게 하는 절차적인 요건에 불과하다. 사고 발생에 법률적인 중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 각호의 사유가 없다면 이는 반의사불벌죄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도 이는 명확하다. 따라서 재해자에게 중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책임요소의 입장에서 별도로 판단돼야 하며, 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 단서 각호의 사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해자에게 중과실이 있다고 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나.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증명책임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앞서 서술했듯이 처분의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행정청에게 있다고 판시하면서도,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원고, 즉 재해자 측에게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해 왔다. 그런데 법문상 상당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단서조항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돼 있어 그 증명책임의 소재가 문제가 돼 왔다(산재보험법 37조1항 참조).

우리 대법원은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로 단서의 상당인과관계 규정은 본문에 대한 내용적 중첩이지 본문과 단서가 각각 각 증명돼야 하는 요건이라고 볼 수 없는 바 증명책임을 피고인 행정청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기존의 판결을 유지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차치하더라도 입법과정상 “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에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을 ‘공단이 증명하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도록 하여 업무상 재해의 판단에 상당인과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일반인이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나 있으므로 반대의견에 따라 판례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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