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일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
(노무법인 이든 대표노무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이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를 실시하고 보고받은 경우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여부 점검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위험성 평가 시스템 구축에 대한 건설사들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위험성평가에 관심이 커진 것이다. 최근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위험성평가를 자체 안전보건시스템 내에 구축해 협력사와 연계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형식적 운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사전 재해예방에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의 위험성평가 이행 현실을 살펴보고 성공적인 정착 방안을 제안한다.

작업 종사자의 실질적 참여 배제

건설공사는 물적·인적 환경 자체가 복잡·다양하고 수시로 변하는 광범위한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도로·항만·터널 같은 넓은 작업 범위, 옥외작업으로 인한 가변적 외부환경, 상호 협력이 어려운 하도급사의 혼재 작업, 공기를 맞추기 위한 돌관작업, 소속감이 적은 취약계층과 외국인 노동자자 등이 그렇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위험성평가 각 단계에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위험성평가 대상 선정과 유해·위험요인 도출이 각 공종별 위험요소 전체가 아닌 일부에 대해 관리·감독자에 의해 일방·선택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작업자의 참여는 제한적이고 형식적이다. 이후 위험성 추정 및 결정 단계에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돼 위험성에 대한 의도적 저평가가 발생한다. 높은 위험성으로 평가된 위험요인이 많을수록 관리적 업무가 증가하기 때문에 관리감·독자가 임의로 ‘사고의 가능성’과 ‘결과의 중대성’을 낮게 판단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허용 불가능한’ 위험성이 ‘허용 가능한’ 위험성으로 분류됨으로써 개선해야 할 위험성이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책 수립 및 실행단계에서는 대책만 수립하고 실행은 지연되는 것이 문제다. 대책만 수립해서 문서로 보관해 놓고 실행을 미룬다. 그러다가 다음 위험성 평가 때에도 동일한 위험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동일한 대책을 수립하기를 반복하고, 해당 공종이 완료되면 대책을 실행할 필요도 없게 된다. 이러는 동안 노동자는 계속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 개선은 이뤄지지 못하고 위험성평가 결과가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 회피 수단으로서 현장 내에 갖춰 둬야 할 증빙문서 정도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위험성평가가 정착되고 안정단계에 이르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험성평가 내실화하려면

첫째, 현장 특성을 감안한 공종·작업별 위험성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건설현장의 공종·작업별로 부상 또는 질병 발생이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모든 위험요소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험성평가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 전사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위험을 예측하고, 현장에서 발굴하지 못한 위험요인을 추가적으로 도출하고, 위험성을 추정·결정하는 ‘AI를 적용한 위험성 평가’를 도입·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둘째, 해당 작업 노동자의 ‘참여 방식’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위험성평가제도는 사업장에서 스스로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전제하에 도입된 제도다. 따라서 가능한 모든 유해·위험요인을 찾아내서 관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현장에서 위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는 해당 노동자를 참여시켜야 유용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고시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 6조는 “사업주가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거나, 감소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 해당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참여시킬 것”만을 명시하고 있다. 해당 작업 노동자의 ‘참여 방식’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해 형식적 참여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개선대책 실행단계에 TBM(작업현장 미팅)·순회 점검·합동 점검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위험성평가 결과 도출된 대책과 개선 활동은 노동자들이 따라야 의미가 있다. 작업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결과를 피드백 해 줌으로써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위험성평가가 돼야 한다. 아침 TBM시 위험성평가에 나타난 당일 작업의 예상 위험에 대한 교육이 합리적 시간을 할애해 이뤄지도록 할 것, 2일에 1회 실시하는 도급인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의 ‘순회점검’시 직전 지적사항이 개선됐는지 반드시 확인할 것, 그리고 2개월에 1회 이루어지는 ‘합동점검’시 위험성평가 결과에 나타난 대책이 이행됐는지를 확인할 것을 제안한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없다. 안전은 스스로 위험을 예방하려는 노력 속에 존재한다. 위험성평가 제도는 잘 정착되면 상당한 산재예방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이미 검증된 손꼽히는 자율안전 관리제도다. 우리 건설 현장에서 작업 노동자가 중심이 된 자율적 위험성 평가가 정착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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