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으로 부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이 정치권·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6~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거치면서 노란봉투법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위기를 느낀 재계와 보수정치권은 노란봉투법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건 모습니다.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 직접적 당사자들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노조탄압에 맞서는 노동자의 권리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손배·가압류를 당한 몇몇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못한다거나, 퇴근하면 혼자 집 앞 산에 올라간다거나, 공허하게 하늘을 쳐다본다든가. 그리고 살아서 뭐하나 생각한다고 한다. 가압류 사실을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도 말 못하는 고충,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미안함에 자살에 이를 정도의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받는다.

쌍용차 사태가 있은 지 13년이 지났지만 손배·가압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선고가 미뤄지면서 손해배상액의 이자가 원금을 넘어섰다. 노동자는 한 달 임금으로 생활하고, 조금씩 목돈을 마련하며 가족과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데, 지연이자를 합친 손해배상액 124억원이 청구됐을 때 발생할 상황은 상상조차 힘들다. 김아무개 동지는 2018년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0번째 죽음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지우고 싶어도 손배·가압류 재판 과정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항변해야 한다. 잊을 만하면 또 기억하고,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의 모멸감과 굴욕감을 떠올린다. '제2의 쌍용자동차'라는 이야기에 흠칫 놀란다. 다른 사업장 노동자의 손배·가압류 문제는 곧 내 문제고, 그렇기에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반복된다.

올해 3월 재판을 앞두고 국가 손해배상 당사자들이 심리상담을 받았다. 지난 7월 진단서가 나온 노동자 24명 중 21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3명은 혼합형 불안·우울장애를 진단받았다.

터무니없는 금액, 살면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돈을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청구하며 노동자에게 2중·3중의 고통을 주는 손배·가압류를 끝내야 한다. 손배·가압류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부정한 사측의 계획적인 노조탄압이다. 노란봉투법은 노조탄압에 맞서게 하는 노동자의 권리다.

 

▲ 이상규 금속노조 충남지부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
▲ 이상규 금속노조 충남지부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

비정규직 차별 없애기 위한 시작
이상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

현대제철 당진공장에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당당히 투쟁하고 있는 2천50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다. 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는 참담하기 그지 없다. 하도급으로 위장한 사내하청업체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 후생복지제도도 적용받지 못한다. 안전보호구 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출근했던 그 모습 그대로 퇴근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다. 이 참혹하고 부당한 현실을 바꿔 보고자 인간답게 살아 보고자 싸우고 있다.

현대제철의 비정규직 노동착취와 불법행위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국가인권위회에서는 정규직과의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내렸으며 고용노동부는 직접고용 시정명령 내린 바 있다. 불법파견 범죄행위가 드러나자 현대제철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불법파견 범죄행위를 은폐하고자 자회사를 설립했다. 현대제철은 업체폐업, 일방적 전적·전배 등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자리는 없었다. 법·제도를 시행하는 주체인 정치권력이 앞장서서 자본가와 기업의 요구를 옹호하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쟁의권을 확보해 파업을 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246억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청노동자들은 헌법이 정한 노동 3권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원·하청 구조를 정당화하는 ‘나쁜 법’에 단체행동권 자체를 제한하는 손해배상이라는 ‘나쁜 법’이 더해져 비정규 노동자들은 평생 구경해 본 적도 없는 액수의 청구를 받았다. 남은 생을 소송하면서 고통과 트라우마 속에서 보내야 한다.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을 뿐인데 목숨 내놓고 인생 걸고 투쟁해야 하는 이 암담한 현실에 비정규 노동자들은 덧없이 쓰러져 가고 있다. 이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헌법상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사용자의 권리남용을 방지하는 새로한 법리가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이 그 시작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란봉투법을 시작으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법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자는 의무만, 사측은 권리만 있는 노동현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난여름 51일간 파업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배를 만든다. 하지만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의 처지와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것이 현행법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원청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국민이 가진 권리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정규직 노동자나 하청노동자나 똑같은 법의 적용을 받고 똑같은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은 파업을 해도 정규직 노동자는 합법이고 하청노동자는 불법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우조선의 배를 만들기 위해 배 위에 올라가는 것은 괜찮고, 파업을 위해 배 위에 올라가는 것은 불법인 현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내 도로 전체를 막고 파업을 하면 파업행위이고 하청노동자가 사내도로에서 대오를 정비하기 위해 서 있어도 불법인 현실! 이렇게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이라 규정하고 불법 파업으로 인한 피해라며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세상!

과연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국가 권력의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는가. 정부는 왜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따져서 불법 프레임을 씌우면서 사측의 폭력과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과연 ‘자본가를 대변하는 윤석열 정부’답다.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헌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노조법 2조 개정’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끊어진 고리를 잇는 것이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다. 이 끊어진 고리를 잇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국가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신분제 사회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노동자가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갚을 수 없는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는 대우조선의 의도는 분명하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고, 이미 여러 사건들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그래서 ‘노조법 3조 개정’은 사측의 노조탄압과 노조 파괴행위에 맞서 노동자의 헌법적 권리인 노동 3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  유성욱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
▲  유성욱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

소모적 노사갈등 막을 수 있는 법
유성욱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

재계와 ‘조중동’, 그리고 경제지들이 노란봉투법 반대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왜 노조가 점거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현재 택배현장의 고용구조 상 택배기사들은 원청의 하청업체인 대리점주와 위탁계약을 통해 택배시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 대리점주들은 택배기사 10~15명에게 구역을 배분하고 택배기사들의 배송수수료에서 10~25% 정도의 관리비를 받아 대리점을 영위한다. 생산설비나 시설을 갖출 필요도 없어 사실상 인력업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택배기사들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은 원청의 모르쇠와 함께 사용자 책임의 주체가 상실돼 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해 원청에 대한 교섭과 쟁의행위가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에 우리 택배기사들에게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쟁의행위에 대한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노사 상호 간 불필요한 분쟁을 없애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CJ대한통운은 노동조합을 상대로 지난 2018년 2월 분당터미널 파업에 대해 8억원, 같은해 7월 울산터미널 파업에 대해 18억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CJ대한통운이 패소했고, 현재 올해 2월 본사 농성에 따른 20억원 손배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받는 정신적 피해와 노조활동 위축으로 유무형의 피해를 입었으며, 사측 역시 불필요한 노사갈등에 따른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노란봉투법은 이와 같은 불필요한 소송을 사전에 방지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노사갈등을 교섭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촉진제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노사갈등과 소모전은 노사 양측에 아무런 실익이 없으므로 노란봉투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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