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언젠가 바람 많이 부는 선착장 앞에서 함께한 벗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얇은 티셔츠가 몸에 딱 붙어 배 불룩 볼품없는 내 몸매가 사진 속에서 적나라했다. 세상 환하게 웃던 표정이, 또 엉거주춤 우스꽝스러운 포즈까지 완벽한 이른바 굴욕 사진이었다. 나도 벗들도 그 사진을 보며 빵 터져 한바탕 웃고 말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진 찍힐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난다. 표정과 옷매무새를 자꾸 신경 쓰게 된다. 망가진 제 모습이 사진에 담기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여름철 땀 범벅에 얼굴빛 벌건 주변 사람 모습이나 화난 표정, 넘어지는 순간을 곧이곧대로 찍어 내곤 하는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굴욕 사진가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이가 슬퍼 오열하기를, 온갖 일을 다해 봐도 끔쩍도 하지 않는 회사에 항의해 바닥을 기고 밥을 굶는 해고자가 좀 더 상한 모습이 되기를 나는 기다리곤 했다. 때때로 사진은 참 폭력적이다. 사진 찍는 행위를 이르는 영어단어는 총을 쏘는 뜻으로도 쓰인다. 방역·소독 업무를 18년간 하다 뇌가 축소되는 신경위축증에 걸린 이학문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던 중에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있다. 인터뷰 내내 쏟아진 그의 억울한 마음과 지금 겪는 고통을 사진에 담지 못해 쩔쩔매던 사진가는 그 순간을 호재로 여긴다. 셔터 버튼을 누른다. 카메라 내려 두고 달려갔어야 했나 싶은 죄책감을 애써 누른다. 오래된, 그리고 매 순간 여전한 사진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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