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가 16일 총파업을 한다. 실질임금 인상, 은행 점포폐쇄 규제 강화, 공공기관 구조조정 중단, 산업은행 부산 이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전가의 보도처럼 ‘배부른 귀족노조 파업’ 프레임만 작동하고 있다. 왜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 김천순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
▲ 김천순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

금융노조 총파업의 날이 밝았다. 우리 금융노동자들의 총파업은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따른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의 행사다.

“국가경제의 중차대한 위기상황에서 귀족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여론은 상투적인 프레임의 반복일 뿐이다. ‘귀족노조’라는 언어도단적인 표현은 수많은 금융노동자를 움츠러들게 했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했다. 우리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고 있는 보통의 노동자다. 저임금 노동자만이 프롤레타리아인 것이 아니고, 고임금 노동자가 부르주아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귀족은 노조가 없다. 진짜 “귀족”들은 “귀족노조”라는 진흙탕에서 노동자들끼리 서로를 비난하는 이전투구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들에게 오는 비난을 회피하고, 오롯이 그 실리를 취해 왔다.

금융노조는 지난 3월23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측에 교섭안건을 제출했다. 7월 말까지 4차의 대표단 교섭과 18차 실무교섭을 진행하였으나 최종적으로 결렬됐고,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마저 중지 결정이 내려졌다. 사용자측은 충분히 숙고하고 협상할 시간을 가졌음에도 대부분의 안건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금융노조는 오랜 시간 합법적 절차를 거쳐 헌법상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투쟁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

주지하시다시피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잔치는 끝났다”는 기만적인 수사로 국민여론을 호도하며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매우 가혹한 시절을 예고했다. 실제로 7월29일에는 “생산성·효율성 제고를 위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공공기관이 방만경영의 온상인 양 대국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기능 축소, 상위직 축소, 인건비 및 경상경비 절감, 복지 감축, 정원 축소, 자산매각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선포했다.

또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헌법이나 법률보다 법적 효력이 약한 기획재정부의 지침이나 가이드라인·경영평가·공문서 때문에 급여에 대한 협상권을 사실상 박탈당하고 있다. 헌법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98호가 보장하고 있는 단체교섭권에 대한 위헌적 침해를 감내하고 있다. 급여나 복지에 있어서 스스로의 근로조건을 결정하지 못하고 공무원에 준하거나, 삭감된 인상분을 적용받게 된다. 3년 연속으로 1% 내외의 임금인상률을 적용받으며, 인플레이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실질임금 삭감을 경험하고 있는 공공노동자들의 절실한 투쟁이다.

이번 금융노조의 총파업은 공공기관 노동자에 대한 파상공세를 막아 내고, 산업은행지부 차원에서는 정치 논리에 따라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지방이전을 막기 위한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노동 3권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헌법적 권리다. 우리는 “귀족”이 아닌 헌법적 권리를 향유하는 보통의 노동자로서 총파업에 나선다.

금융노조의 역사를 보면 선도적인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통한 대한민국의 주 5일제 정착, 연대임금 조성을 통한 사회적 연대 강화와 양극화 해소 노력, 여행원 제도 폐지(여성의 호봉승급 및 수당에서의 공식적 차별) 및 결혼각서제 폐지(여성이 결혼시 퇴사) 등 남녀 차별 시정, 모범적인 산별노조 정착 등 대한민국 노동기본권 확보에 매우 중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오늘 우리의 총파업은 훗날 새로운 노동의 역사를 위한 이정표가 되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투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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