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삼성물산 하청업체가 산업재해를 은폐했다가 법원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노동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다. 하청업체 책임자들은 산재보상보험으로 산재를 처리하는 대신 회사 경비로 치료비를 지급해 산재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청 안전관리자, 손가락 골절상
회삿돈으로 치료비 내고 ‘정상 출근’ 위장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66단독(이재경 판사)은 하도급 업체의 안전관리자 A씨가 삼성물산과 하청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산)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사건은 A씨가 2019년 5월 평택 고덕산업단지 반도체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손가락 골절을 입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공사는 삼성물산이 시공했는데 승강기 설치공사를 B사에 도급했고, B사는 다시 C사에 안전관리 업무를 위탁했다. A씨는 C사에 소속된 현장 안전관리자였다.

그런데 하청업체는 산재 은폐에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C사의 실경영자인 D씨와 B사 현장소장은 산재 보고로 인한 불이익을 피하려고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채 회사 비용으로 진료비를 지급했다. 또 3일간 휴업 기간에 A씨가 정상 출근한 것처럼 급여를 지급하고는 산업재해조사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B사 현장소장은 산재를 은폐한 사실이 없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지만, 올해 2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A씨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산재 은폐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2020년 1월 소송을 냈다. 특히 삼성물산이 요양급여신청에 대해 산재 발생을 부인하는 의견서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거나 회사와 의논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는 등 산재 은폐에 동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C사측은 산재 은폐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B사 현장소장이 선의로 3일간 휴무를 유급으로 처리해 준 것이라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삼성물산 역시 요양급여신청 이후에야 사고 사실을 알았고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의견서를 낸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산재 다발’ 이력 염려해 공상 종용
삼성물산 책임은 불인정 “증거 없어”

법원은 산재 은폐가 맞다며 하청에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B사 현장소장과 D씨는 A씨가 업무 중 부상을 입은 사실을 알게 됐는데도 공상으로 처리하기로 정해 산업재해를 은폐했다”고 지적했다. 공상 처리는 노동자가 산재를 당했을 때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대신 회사에서 치료비를 보상해 주는 제도다.

고용노동부 지침에도 사업주가 회사 비용으로 보상한 사실이 확인되면 산재 은폐 정황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A씨가 자비로 치료받은 후 B사 현장소장이 휴무 3일치를 출근한 것으로 처리해 급여를 지급하고, D씨가 치료비를 추가로 지급한 것은 ‘공상 처리’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산재 처리를 권유했지만 A씨가 거절했다’는 현장소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현장소장은 A씨에게 “당시 삼성물산 공사현장에 사고들이 좀 있어서 이것까지 알려지면 안 되니 공상으로 조용히 처리하자”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D씨는 이 같은 내용을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다. 삼성물산 공사현장은 2018년 3월 작업대 붕괴로 하청노동자 한 명이 숨지고 네 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고, 지난해 6월에도 50대 하청노동자가 지게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알려지는 것을 염려해 쉬쉬한 셈이다.

다만 삼성물산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부인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고 요양급여신청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하청의 산재 은폐에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원·하청 모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은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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