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12일 발간한 ‘2021 현대 노예제의 글로벌 상황: 강제노동과 강제결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 150명당 한 명꼴인 4천960만명이 현대적 노예제인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강제결혼도 현대판 노예제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 ILO는 보고서에서 국제연합(UN)의 핵심 정책인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서 아동에 대한 강제노동을 2025년까지, 그리고 성인에 대한 강제노동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2035년까지 근절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데도 많은 나라에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ILO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전염병에 더해 날로 확산하고 있는 무장충돌 때문에 고용과 교육에서 전례 없는 단절이 일어나고 있다. 극단적 빈곤에서 초래되는 강제이주가 늘어남에 따라 현대판 노예제인 강제노동과 강제결혼이 확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공식경제 종사자와 비정규 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자 같은 차별과 착취에 취약한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판 노예제 피해자 4천960만명 중에서 55.6%인 2천760만명은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나머지 44.4%인 2천200만명은 강제결혼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수치는 5년 전인 2016년과 비교할 때 강제노동은 270만명(10.8%), 강제결혼은 660만명(26.5%) 늘어난 것이다.

강제노동이 가장 많은 곳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전체 피해자의 절반이 넘는 1천510만명이나 됐다. 다음으로 유럽 및 중앙아시아 410만명, 아프리카 380만명, 남북 아메리카 360만명, 아랍제국 90만명 순이었다. 지역별 전체 인구에서 강제노동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랍제국이 5.3%로 가장 높았다. 유럽 및 중앙아시아(4.4%), 남북 아메리카(3.5%), 아시아·태평양(3.5%), 아프리카(2.9%)가 뒤를 이었다. 강제노동의 86%는 민간부문에서 이뤄졌으며, 나머지 14%는 국가에 의해 이뤄졌다.

국가에 의한 강제노동이란 ILO 강제노동 협약 29호 및 강제노동 철폐 협약 105호와 관련돼 있다. 협약 29호는 순전히 군사적 성격의 징병제를 제외한 병역제도를 강제노동으로 판단한다. 협약 105호는 현행 체제에 반대하는 정치적 견해와 사상적 의견을 표현한 사람과 파업 참가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수단으로 징역형을 가하는 것을 강제노동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국가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을 동원하는 행위도 강제노동으로 규정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4월 결사의 자유 협약 87호와 단체교섭권 협약 98호를 비준하면서 협약 29호도 비준했다. 하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과 파업 참가자를 업무방해로 처벌하는 형법과의 충돌로 인해 협약 105호는 비준하지 않았다. ILO 회원국 187개 나라 가운데 1957년 채택된 협약 105호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브루나이·라오스·마샬 군도·미얀마·팔라우·동티모르·통아·투발루 9개 나라뿐이다.

공산당 일당 지배 국가인 중국은 협약 105호를 지난 8월 비준했으며, 중국과 동일한 정치체제를 가진 베트남도 2020년 7월 비준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 허용에 부정적이었던 일본 정부도 비준을 미루다가 올해 7월 비준했다.

ILO는 보고서에서 강제노동을 근절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방안으로 근로감독을 통한 법집행을 강화하고, 국가가 형사적 처벌 수단으로 강제노동을 시행하는 법률을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또 현대판 노예제인 강제노동과 강제결혼의 덫에 빠지기 쉬운 빈곤층과 여성, 그리고 이주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라고 강조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