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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장애로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남편에게 살해된 직장 상사의 유족이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직장내 인간관계 위험이 현실화해 일어난 사고라고 판단했다.

1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최근 사망한 노동자 A(사망 당시 40세)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의처증 남편, 아내 퇴사 4개월 만에 범행
‘직무 위험성 없다’ 공단 판정에 소송

A씨는 2020년 3월10일 오후 6시15분께 퇴근해 회사 정문 앞에 주차한 자신의 승용차에 타려던 중 퇴사한 부하 직원의 남편 B(43)씨에게 수차례 흉기로 찔려 숨졌다. B씨는 자신의 아내와 A씨가 내연관계라는 망상에 빠져 미리 흉기를 구입해 차량을 렌트한 뒤 근처에서 대기하다 A씨가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B씨의 휴대전화 메모에는 A씨와 아내의 관계를 의심하는 내용과 A씨의 차량번호가 적혀 있었다.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B씨는 밤늦게 찾아와 회사 워크숍에서 아내를 데려가고, A씨와 자신의 아내가 면담하는 것을 보고 “죽여 버린다”며 협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 아내는 결국 남편의 의처증으로 회사에 해가 될 것을 염려해 퇴사했다.

B씨는 살인죄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지난해 3월 항소심에서도 원심판결이 유지됐다. 법원은 망상장애로 인한 판단력 저하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A씨 아내는 남편의 사고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있었던 것이 아니며 통상적인 퇴근 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될 수 있는 범위 내의 사고가 아니다”며 부지급 처분을 했다. B씨 아내가 퇴사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사고가 발생해 직무상 내재된 위험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자 A씨 아내는 직장 안의 인관관계에 내재한 위험이 현실화한 것이라며 지난해 7월 소송을 냈다. 또 정상적인 퇴근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업무상 재해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 “고인 업무 계기로 사고 발생”

법원은 A씨 아내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재해는 직장 안의 인간관계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해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시했다. A씨와 B씨 아내가 개인적으로 접촉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어 ‘사적인 관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특히 팀장인 A씨가 부하 직원과 업무상 접촉이 불가피했던 점이 주된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B씨는 고인과 B씨 아내의 면담 장면과 퇴근 뒤 업무지시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내연관계를 의심하게 됐다”며 “B씨가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 것도 고인의 업무가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B씨의 정신질환이 재해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퇴사 후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정이 있더라도 직장 안의 인간관계에 내재한 위험이 현실화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며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전제로 (업무관련성 인정에) 사고 발생장소가 사업장이거나 출퇴근 과정 중에 사고가 발생했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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