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22. 8. 18. 선고 2021가합527393 임금

1. 사건의 경위

피고는 자동차 제조 및 판매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고, 원고는 피고 공장에서 조립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다. 원고의 아버지인 망인은 피고 소하리공장 및 시화연구소의 간이금형반 등에서 근무했다. 2010년께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 후 2013년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사망 당시 피고의 노사 단체협약 27조2항은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과 6급 이상 장해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 하도록 한다”(이하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라고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원고는 2014년 3월31일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근거로 피고를 상대로 채용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선고됐으나(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합17034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5나2067268 판결), 상고심에서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기환송됐다(대법원 2016다248998 판결). 파기환송심에서 피고가 원고의 위 청구를 인낙했다(서울고법 2020나 2030758, 이하 ‘이 사건 선행소송’이라고 한다). 한편 피고는 이 사건 선행소송의 파기환송심 진행 중인 2021년 3월8일 원고를 엔지니어·기술직인 조립공정 담당 신입사원(1호봉)으로 채용했다.

2. 쟁점

가. 채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내지 임금청구 관련

원고는 채용되지 않았던 기간에 대해서는 임금상당의 손해배상을, 채용 후 기간에 대해서는 정당한 호봉에 따른 임금에서 지급받은 임금을 공제한 차액을 청구했다.

1) 귀책사유 부존재 항변

피고는 ‘이 사건 선행소송 1·2심 등에서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돼 무효라고 판단됐고, 고용노동부도 위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위 조항의 유효성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피고에게 이 사건 선행소송 상고심 판결 선고일인 2020년 8월27일까지는 채용의무 불이행의 고의나 과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채무자가 채무의 발생원인 내지 존재에 관한 법률적인 판단을 통해 자신의 채무가 없다고 믿고 채무의 이행을 거부한 채 소송을 통해 이를 다퉜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의 그러한 법률적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에 관해 채무자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대법원 2011다85352 판결 등)”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① 단체협약은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② 피고는 1990년대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래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었으며, ③ 피고는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따라 9명을 특별채용했는데, 그중 2명은 이 사건 선행소송이 계속 중 특별채용됐고, ④ 고용노동부도 2015년께 업무상 재해로 인해 조합원이 사망한 경우에 직계가족을 특별채용하도록 규정한 단체협약의 특별채용 조항은 단순한 일자리세습 채용 조항과 달리 그 위법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대상판결이 관련 대법원 판례와 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근거해 피고의 항변을 배척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2) 위법성조각 사유 존재 항변

피고는 “피고가 원고를 채용하지 않은 것은 헌법상 재판을 받을 권리에 기해 이 사건 선행소송에 응소한 결과이고, 피고는 이 사건 선행소송 1·2심 판결을 믿고 원고를 채용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에게 이 사건 선행소송 상고심 판결 선고일인 2020년 8월27일까지는 채용의무 불이행에 대한 위법성조각 사유가 있다”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채무불이행에 있어서 확정된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이 행해지지 아니했다면 그 자체가 바로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고, 다만 그 이행하지 아니한 것이 위법성을 조각할 만한 행위에 해당하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채무불이행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대법원 2000다47361 판결 등)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2014년 4월28일 이 사건 선행소송의 소장을 송달받고도 6개월 이내에 원고를 채용하지 않았는 바, 피고가 이후 선고된 1·2심 판결 결과를 본 다음 원고를 채용하지 않았다고는 보이지 않고, 소송이 계속 중에 있음에도 원고와 같은 지위에 있었던 2명을 특별채용하기도 했다. 대상판결이 관련 대법원 판례와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근거해 피고의 항변을 배척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3) 소멸시효항변

피고는 이 사건 소 제기일인 2021년 4월16일부터 역산해 3년 전에 발생한 원고의 임금 상당 손해배상채권 및 임금채권은 그 소멸시효가 완성돼 소멸했다고 항변했고, 이에 대해 원고는 이 사건 선행소송 제기로 위 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됐다고 재항변했다.

이 사건 선행소송은 채용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송으로, 피고가 원고를 채용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는 이 사건 선행소송의 청구 당부를 판단하는 핵심 쟁점이자 원고가 이 사건 소송에서 피고를 상대로 청구하는 임금 상당 손해배상 내지 임금 발생의 기본적 법률관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건 선행소송 제기로 임금 상당 손해배상채권 및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중단됐다(대법원 2016다25140 판결 등). 대상판결이 관련 대법원 판결과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근거해 원고의 재항변은 이유 있고,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나. 호봉정정 청구 관련

원고는 피고가 원고를 채용해야 했던 2014년 10월28일부터의 호봉승급을 반영해 원고의 호봉을 2022년 1월1일 기준 ‘엔지니어·기술직 19호봉’(별도호봉 2만8만800원)으로 정정할 것을 청구했다. 이와 관련해 원고는 서울고법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고용의제 또는 고용의무가 인정되는 노동자들의 호봉정정 청구에 대해 “피고는 호봉청구 원고들에 대해 중요한 근로조건의 하나인 호봉을 부여함에 있어서도 고용간주 효과 발생일 또는 고용의무 발생일부터 피고 소속의 동종 또는 유사업무 종사 근로자들을 고용한 경우와 같은 호봉을 부여해야 한다”[서울고법 2017나2067675, 2017나2067682(병합), 2017나2067699(병합), 2017나2067705(병합) 판결]고 판시한 부분을 원용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이 사건의 경우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는 근로자가 고용간주일 또는 고용의무 발생일을 기준으로 호봉정정 청구를 한 경우와 동일한 법리가 적용되는 사안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 사건 단체협약상 특별채용 조항에 따라 피고에게 원고를 고용할 의무가 발생한 경우와 법률에 의해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경우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피고의 위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대상판결이 피고는 원고에게 임금을 지급함에 있어 원고를 채용해야 했던 2014년 10월28일부터의 호봉승급을 반영해야 하므로, 원고의 호봉을 2022. 1. 1. 기준 ‘엔지니어·기술직 19호봉’(별도호봉 2만8천800원)으로 정정할 의무가 있고 판시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3. 의의

피고는 이 사건 선행소송의 하급심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을 주된 근거로 채무불이행에서의 고의·과실 및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대상판결은 이를 배척하면서 산재유족 특별채용 의무를 약 7년간 불이행한 사용자에게 금전지급 뿐만 아니라 호봉정정을 명했다. 위와 같이 대상판결은 단체협약상 산재유족 특별채용 의무를 불이행한 사용자가 부담하게 될 금전지급 및 호봉정정 의무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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