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

정부가 지난 8월30일 2023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그간 빠르게 늘어난 총지출 증가율을 하향 안정화하겠다며 총 639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607조7천억원) 대비 5.2% 늘어난 규모지만 추경을 포함한 예산(679조5천억원)과 비교하면 6.0% 삭감된 것이다. 2018~2022년 본예산 총지출 증가율 평균인 8.7%의 60%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다. 물가상승률과 자연증가분 등을 고려했을 때, 2023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더 적게 편성됐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종합부동산세·법인세 등 대대적인 부자감세 정책으로 부족해진 세수 문제 해결을 위해 엄격하게 지출을 관리하겠다는 기조에 기인한다. 또한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계속 견지하기 위해 재정수지를 -3% 이내로 관리하겠다며 지출 통제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준칙은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 적합한 것일까? 감염병 재난 외에도 저출생·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적 위험 문제, 최근 경제위기 등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재정의 유연한 운용이 더 중요하다. 이미 유럽 연합(EU) 회원국은 위기 발생 때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고, 긴축에 나설수록 되레 경제가 악화해 국가채무가 더욱 상승하는 ‘부채의 역설’을 경험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 적재적소에 충분한 재정을 투입한 경험이 없지 않은가. 2020년 코로나19 발생 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출규모를 평균 50%까지 확장했지만 우리나라는 37.1%에 지나지 않았다.

감염병 재난으로 불평등·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고, 그 여파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직면한 경제위기로 시민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적극적 재정 운용을 통한 공공지출 확대가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긴축재정 기조를 강조하며, 재정의 건전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맞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고용 부문 예산을 살펴보면, 올해 본예산 대비 4.1% 증가했으나 이는 전체 예산 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보건·복지 분야 예산은 11.8% 증가한 109조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기준중위소득 이상에 따른 예산증액과 기초연금 인상·부모급여 도입 등이 두드러질 뿐, 돌봄 서비스 전반에 걸친 공공인프라 확충과 공공의료 강화 예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 빈곤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사회안전망 강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용노동부 예산은 올해 대비 4.3% 감소했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특별고용촉진장려금·일자리안정자금·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은 코로나19 일상회복에 따른 한시적 사업이기 때문에 지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하며 예산을 삭감했다. 이렇게 해서 삭감된 금액은 약 1조7천억원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업장이 많아져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자가 급증한 바 있다. 여기에 경제위기까지 직면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반면 OECD 국가는 전례 없이 고용유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2009년 금융위기 때보다 10배 이상은 지원했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축소할 것이 아니라 위기 이전보다 더 확대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예산도 2022년 대비 2천693억원(18.0%) 삭감됐다. 실업부조 기능 축소와 다름없다. 장기간의 실업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에 고용위기 상황에서 제도를 최대한 확장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 정부의 고용유지와 고용안정에 대한 인식 부재가 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는 결과로 귀결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

재정 트릴레마는 높은 복지 수준 - 낮은 조세 부담률 - 낮은 국가채무 비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재정의 트릴레마를 외면하고, 감세 - 부채 축소 - 복지 축소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와 작은 정부의 2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낮은 조세부담률과 OECD 국가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공공사회복지지출이라는 전형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다. 지금은 적극적인 재정 확대로 재난 상황에서 무너진 시민들의 삶을 회복시키고, 불평등과 양극화의 격차를 좁혀 나가야 하는 시점임을 정부와 국회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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