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위원장

지난 8월25일, 윤석열 대통령은 매월 둘째·넷째주 일요일인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현재와 같이 유지하겠다고 했다. 마트노조뿐만 아니라 서비스연맹 유통분과 수많은 조합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노조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만들기 위해 2013년 열심히 싸웠다. 유통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첫걸음이 바로 ‘다 함께 쉬는 휴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 우리 노조는 매주 전국을 돌며 의무휴업을 요청하는 선전전을 했다. 조합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거리에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아쉽긴 했지만 대형마트 일요일 의무휴업이라는 귀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긴 싸움의 결과로 만들어진 소중한 의무휴업을 윤석열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없애려고 하는 시도에 우리 노조는 누구보다 분노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 유통기업은 어떻게든 매장을 닫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주말은 더욱 그렇다. 가능한 365일 쉬지 않고 매장을 굴리려고 든다. 그 때문에 유통노동자들은 언제나 첨예한 스케줄 조정에 시달려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브랜드 입점업체들이 주를 이루는 백화점과 면세점은 주말이면 훨씬 높은 노동강도에 노출된다. 주말 연장영업 때문이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왔다. 각 브랜드들에게 온라인 판매가 중요한 사업전략으로 떠오른 이후에는 샘플링이나 팝업스토어 같은 추가 노동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평일에도 이미 장시간 노동이지만, 노동자와 아무런 협의 없이 백화점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발생하는 주말의 연장영업은 더욱 심각하다.

대부분 여성인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한다는 이중의 억압 속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여성에게 부가되는 재생산노동(육아, 집안일 등)을 이행하지 못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부담에 더해 죄책감까지 느끼게 된다. 아이들과 여행 한번 가지 못하는 삶은 노동자 자신에게도 괴롭지만, 거기에 사회적 압박까지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대한 쉬는 날 없이 매장을 열려는 유통기업들의 욕심은 쉬는 날조차 온전히 쉴 수 없게 한다. 초연결사회의 노동이라고 했던가. 휴일의 휴대폰은 불안하고 원망스럽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은 휴무일이 되면 쉬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언제 매장에서 전화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판매한 물건에 관한 문의 사항이 온다거나, 담당 VIP 고객이 휴무일에 찾아온다거나, AS 요청이 있다거나. 쉬는 날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부지기수다. 마음 졸이면서 보낸 휴일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다시 출근이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

서비스연맹은 지난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한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설문에 따르면 백화점 노동자는 휴가를 제때 사용할 수 없었다. 절반이 넘는 백화점 노동자는 아파도 쉬지 못했고, 10명 중 4명은 가족 돌봄을 못 했다. 60%가 넘는 노동자가 주말 가족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백화점 노동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요구는 바로 ‘정기 휴점’, 즉 다 함께 쉬는 휴일이었다. 아직 노동조합이 없는 백화점 노동자들의 84%가 정기 휴점을 요구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만드는 데 함께 싸우고, 그걸 지키는 데에도 최선을 다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모든 유통노동자에게는 쉴 권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마트노동자와 백화점·면세점 노동자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마트노동자들의 쉴 권리가 보장된다면, 이는 더 발전해서 언젠가는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권리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는 모두 일터로 간다. 그러나 동시에 일터를 떠나서 일터 바깥의 삶을 영위한다. 어느 노동자에게나 일터 밖에 실제 삶이 있다. 유통노동자에게도 ‘판매하지 않는 삶’이 있다. 아이들과 여행을 가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삶을 삶으로 만든다. 유통노동자를 단지 물건 파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 삶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는 현실에 휴식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마트노동자들을 온전히 쉬게 했다. 그 권리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나선 유통노동자들의 요구는 유통산업발전법 제정 이전부터 현재까지 변하지 않았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을 비롯한 모든 유통노동자에게는 판매하는 삶 바깥에서 온전히 쉴 권리가 필요하다. 유통노동자의 휴식권을 확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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