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16다40439 판결, 대법원 2021다221638 판결

1. 사건의 경과

가. 사실관계

피고는 철강제조업 등을 행하는 회사로 피고의 제철소는 철강 생산을 위한 전 공정이 하나의 제철소 내에서 하나의 흐름하에 모두 이뤄지는 이른바 일관제철법에 따른 제철공장이다. 피고는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들과 협력작업 계약을 체결하고, 제철소 내 압연공정과 관련한 각종 작업의 일부를 사내협력업체들에게 맡겨 왔다. 원고들은 위 각 사내협력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피고의 제철소 내 압연공정 중 공장업무(크레인·지게차 등을 이용한 코일 운반, 아연투입, 시편 운반·검사, 박리테스트, 시험편 미니프레스, 용약샘플 운반, 드로스 운반, 슬리브 보급, 스크랩 코일 인출), 제품업무(입고실사, 출하, 출하검수, 목전라벨부착, 대차, 무인 크레인 이상 발생시의 업무, 무인 크레인 관리)등을 수행해 왔다. 원고들은 피고 회사와 협력업체들 사이에 체결된 협력작업계약은 그 명칭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고, 원청업체가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인 원고들을 계속 사용했거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른 근로자파견 대상업무에 해당하지 않는 업무에 원고들을 사용했는 바, 원고들은 피고의 근로자 지위에 있거나 피고는 원고들에 대해 고용의 의사를 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나. 소송경과

대법원 2016다40439 사건(1차 사건)은 압연공정 내 크레인과 지게차를 이용한 운반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등을 구한 사건이다. 대법원 2021다221638 사건(2차 사건이라함)은 크레인·지게차 운전자를 비롯하여 공장업무·제품업무에 이르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각기 다른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1·2차 소송 모두 1심 법원은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파견근로 관계를 부정했고, 2심은 이러한 1심을 결론을 뒤집고 원고들과 피소 사이의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했으며, 3심은 2심 판결의 주요 판단이유를 긍정하면서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2. 판결의 요지

가. 상당한 지휘·명령

대법원은 1) 원고들은 1999년께까지는 피고가 제공한 작업표준서에 따라, 그 이후에는 이 사건 각 협력업체가 기존 작업표준서를 기초로 핵심적 내용이 질적으로 동일하게 자체적으로 작성해 피고로부터 정합성 검증을 받은 작업표준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한 점, 2) 피고의 제품 생산과정과 조업체계는 전산관리시스템[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에 의해 계획되고 관리되고, 원고들은 MES를 통해 전달받은 바에 따라 협력작업을 수행했으며, 전산관리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도 생산과정에 오류 등이 발생해 압연 코일의 위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 좌표 등이 설정되지 않은 장소에서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 등에는 피고 소속 근로자가 직접 CLTS 화면에 작업내용이 나타나도록 정보를 입력하기도 한 점을 들어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상당한 지휘명령을 인정했다.

나. 실질적 편입

대법원은 1) 원고들의 업무는 세부적인 생산공정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거나 공정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압연공정 자체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업무인 점, 2) 크레인을 통한 원고들의 업무수행과 피고의 코일 생산공정을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점, 3) 원고들의 업무의 작업성과는 이후 시행될 공정, 나아가 전체 압연제품 생산공정의 소요시간과 작업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점, 4) 원고들은 코일운반 업무 외에도 시편검사, 롤교체작업, 입고실사, 목전라벨 부착등의 업무에서 피고 소속 근로자들과 광범위하게 협업해 온 점을 들어 원고들의 피고 사업에의 실질적 편입을 인정했다.

다. 사내 협력업체의 독자적 결정 권한

대법원은 이 사건 각 협력업체들이 수행한 협력작업에 대한 평가는 각 협력업체들이 수행한 작업물량이나 완수한 작업량 등 업무성과에 따른 점수를 가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피고의 조업에 지장을 주거나 작업을 지연시키는 등 피고의 업무를 저해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저해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정해진 점수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 바, 이 사건 협력업체는 인사·노무관리에 있어 독자적 결정 권한이 없음을 인정했다.

라. 계약목적의 사전확정성, 업무의 구별성, 전문성·기술성

대법원은 원고들이 수행한 대부분 작업들의 구체적인 내용은 작업표준에 따라 단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서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피고가 각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대가는 완성된 물량이 아니라 주로 각 협력업체가 투입한 근로자의 인원, 근로시간 등을 기초로 산정됐는 바, 계약목적이 사전에 확정되지 않고 업무의 구별성, 전문성·기술성이 없다고 봤다.

마. 계약에 필요한 독립적 조직·설비 존부

대법원은 1) 원고들의 크레인 운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설비인 천장크레인과 코일 등 운반업무 수행에 필수적으로 사용된 전산관리시스템은 모두 피고가 소유하고 실질적으로 관리했고 2)이 사건 각 협력업체는 대부분의 매출을 피고와의 거래를 통해 달성했는 바, 이 사건 협력업체가 계약에 필요한 독립적 조직·설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바. 기타 - 실효의 원칙 및 협력업체에서의 근로관계의 종료 효력 등

대법원은 1) 원고 중 일부가 하청업체로부터 징계 면직을 당하고 퇴직금 등을 수령했으나, 이를 피고가 한 것으로 평가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와의 직접고용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2) 원고들의 주장이 신의칙에 위반된다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3. 판결의 의의 및 시사점

이번 판결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후속 소송 및 유사업종의 근로자파견 판단에 있어서 시사하는 점이 있다.

첫째, 일관제철법에 따른 연속흐름 공정이라는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피고는 생산제품을 적치하는 야드의 존재, 시스템에 의한 생산속도 결정 등을 이유로 자신들이 생산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운반작업 등을 지연하거나 중단하면 피고 압연라인 전체의 생산이 중단·지연될 수 있으므로 협력업체가 작업속도와 작업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이나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즉, 자동차 컨베이어벨트처럼 중단 없이 생산공정이 흘러가야만 연속공정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생산에 영향을 주고받으면 연속공정으로 봤다.

둘째, 상당한 지휘·명령의 판단요소로서 작업표준서 및 작업사양서의 의의를 재확인하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사정이 아닌 그 실질에 주목해야 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법원은 작업의 결과가 아닌 작업의 과정, 즉 작업의 내용을 정하는 작업표준서를 피고가 작성해 줬다면, 이 역시 피고가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내용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 되므로 상당한 지휘·명령의 한 근거가 되고, 작업사양서 역시 도급의 결과물이 마땅히 갖춰야 할 모습(결과)이 아닌 도급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인력·작업의 내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면, 이 역시 그 실질은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업무지시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아가 설사 협력업체 명의의 작업표준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청에 의해서 통제되거나 원청이 내용의 제·개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원청이 제공한 작업표준서에 따라 하청업체가 작업표준서를 작성했다면 협력업체가 작성한 작업표준서는 독자적인 의미가 없는 것이고, 원청이 상당한 지휘·명령을 한 것이라고 봤다.

셋째, MES를 통한 작업지시가 상당한 지휘·명령에 해당한다고 봤다. 생산관리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대규모 제조업 생산과정에서 전자적 형태로 협력업체 또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전달되는 업무지시에 대해 협력업체 또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이를 수정·변경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그 정보에 따라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 이는 구속력이 있는 지시라고 봤다.

넷째, 협력업체가 일정한 조직적·물적 실체를 가졌다는 점만으로는 근로자파견 성립에 영향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파견법상 파견사업주의 개념은 이미 조직적·물적 실체를 갖추고 인사권 등의 권한을 가지는 법적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 파견사업주에게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상 고용·해고·징계·임금 지급·교육 등에 관한 권한 내지 의무가 있음을 고려해, 사내협력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의 인사·노무 관리에 관한 독자적 결정권한이 있는지는 편면적(片面的) 요소로 해석돼야 함을 명확히 했다. 즉, 채용·근태관리 등 인사·노무에 관한 권한을 사내협력업체가 행사한 사정이 있더라도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에 지장이 없으며, 반대로 그러한 권한 행사에 피고가 부분적이라도 관여한 사정이 있다면 사내협력업체에게 독자적이라고 할 정도의 결정 권한은 없다고 평가돼야 하며, 이는 근로자파견관계를 긍정할 수 있는 징표가 된다고 보았다.

다섯째, 원고와 협력업체와의 근로관계 종료는 파견근로관계 성립에 영향이 없고, 오랜 시간이 지나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의 소제기가 실효의 원칙위반에 해당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원고 중 일부가 하청업체로부터 징계 면직을 당하고 퇴직금 등을 수령했으나, 이를 피고가 한 것으로 평가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와의 직접고용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원고들의 주장이 신의칙에 위반된다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근로자파견이 성립되면 이후에 파견근로자와 하청업체 사이에 발생한 법률 효과는 원청에게 미치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으로 의미가 있다. 어떠한 쟁점에 대한 노동법상의 확립된 견해나 법원의 확립된 입장이 없는 등의 이유로 승소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법적 권리의 행사를 상당 기간 하지 않았다고 해 신의성실 원칙이나 실효의 원칙을 섣불리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명백히 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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