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일제강점기 항일혁명가이자 노동운동가였던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고 있다. 10월26일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출범을 목표로 발기인을 모집한다.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회 추진을 위한 3차 발기인모임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과 최승회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재유와 일제하 노동운동’ 연구자인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와 이재유 선생과 경성트로이카에서 같이 활동했던 이관술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씨, 이효정 선생의 아들 박진수씨도 함께했다.<본지 8월23일 10~12면 ‘혁명적 노조운동 상징 이재유와 서울 영등포’ 기사 참조>

세계노동운동사 학습하며 이재유 선생 ‘재조명’

기념사업은 김금수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상임고문이 추진해 온 세계노동운동사 학습모임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는 2007년 1기 학습모임부터 ‘일제시대 노동운동과 이재유’에 대한 학습을 진행했다. 2013년 7월에는 김경일 명예교수를 초청해 같은 주제로 세계노동운동사 3차 특강을 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같은해 8월에는 민중조각가 고 조월희 선생이 제작한 이재유 선생 흉상을 기증받았다. 2015년부터는 이재유 선생이 옥사한 날인 10월26일 즈음해 매년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사무실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마침내 올해 4월20일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9차 총회에서 10월26일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회 준비위 추진을 목표로 한 사업을 결의했다. 이어 6월15일 1차 발기인모임, 7월20일 2차 발기인모임에 이어 이날 3차 발기인모임까지 가지며 사업을 추진해 왔다. 현재 발기인모임에는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취지문에서 “이재유 선생은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민족해방투쟁을 이끌었다”며 “노동자 주체성을 키우고 투쟁 속에서 단련해 노동해방을 이루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혁명적이었던 만큼 민족적이고, 민족적이었던 만큼 민중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22년 한국 민중운동은 새로운 다짐과 실천이 요구되고 있다”며 “선배 혁명가들의 고뇌에 찬 실천 속에서 미래를 여는 열쇠를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재유와 경성트로이카 항일노동운동의 상징

이 자리에 함께한 이관술·이효정 선생의 유족들도 힘을 보탰다. 경성트로이카는 1930년대 서울지역 주요공장에서 파업을 이끌어 내고 연대파업으로 확장하려 노력했다. 1934년 1월 이재유 선생은 체포됐지만 갖은 고문을 버텨 냈고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제의 조여 오는 포위 속에 1936년 12월 최후 검거됐고 이관술 선생은 이재유 선생이 시간을 버는 사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재유 선생은 6년형을 다 마치고도 전향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하고 해방 1년 전 옥사했다. 이관술 선생은 경성콤그룹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이어 갔고 변장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며 일제의 수배를 따돌렸다. 하지만 해방 뒤 미군정하에서 체포돼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총살당했다.

이효정 선생은 경성트로이카에서 활동하며 1933년 종연방직 파업투쟁 지도, 경성지방좌익노조 준비위 활동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해방 뒤 남편인 사회주의계 항일운동가 박두복이 1945년 남로당 사건에 연루돼 수감 뒤 월북하면서 그와 가족은 평생 연좌제로 고생했다. 이효정 선생은 2010년 별세했다.

▲ 일제의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보이는 이재유의 32세 때 모습. 1936년 12월26일 형사과에서 작성했다.<국사편찬위원회>
▲ 일제의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보이는 이재유의 32세 때 모습. 1936년 12월26일 형사과에서 작성했다.<국사편찬위원회>

“선배 혁명가들 실천 속 미래 여는 열쇠 찾겠다”

이효정 선생의 아들 박진수씨는 “평상 연좌제 때문에 제대로 취직을 못했다”며 “영세한 공장에 근무하면서 노동운동이란 것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념사업회 출범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보탰다. 그만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념사업을 한다고 해 놓고는 제대로 하는 것을 못 봤다”며 “이재유 선생 제사상 차리고 절하는 것으로는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관술 선생 외손녀인 손옥희씨는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반가워서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좋은 일 하시는 데 너무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기념사업회 법인 설립이 까다롭고 계속 유지·활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히 젊은 세대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온라인상에서 많은 자료를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9년에는 이관술 선생 고향인 울산에서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가 출범한 바 있다.

이 같은 의견을 모아 이날 회의에서는 준비위원 예비명단을 검토하는 한편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 학계,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준비위원을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또 자료수집과 홈페이지 개설, 사업수립과 회원모집 등 준비위 출범 전까지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4차 발기인모임은 다음달 28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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