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근로복지공단이 동료 가해자에게 보험급여 지급에 대한 구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동료가 행한 가해는 사업장이 갖는 하나의 위험에 해당하므로 공단이 별도로 직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직장 상사 성추행에 극단적 선택
유족에 보험급여 지급 후 구상금 청구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19일 근로복지공단이 보험급여를 지급한 피해자의 가해 동료 A씨를 상대로 청구한 구상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부하직원인 B씨를 성추행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B씨는 약 2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공단은 B씨의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유족들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했다.

이후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조항에 따라 A씨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산재보험법(87조1항)은 공단은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 급여를 받은 사람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신(대위)한다고 정하고 있다.

쟁점은 구상권 행사의 상대방인 ‘제3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제3자’는 재해 노동자와 산재보험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재해 노동자에 대해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 사고와 무관해야 ‘제3자’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1·2심은 가해 동료 A씨도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제3자’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동료 직원의 가해행위가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큰 경우에는 동료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봤다.

대법원 “동료 가해는 하나의 위험”
“사업주와 함께 산재보험 관계”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산재보험에 관련돼 있어 ‘제3자’에서 제외된다는 취지다. 2004년 12월 대법원 판례(2003다33691)를 근거로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동료 근로자에 의한 가해행위로 다른 근로자가 재해를 입어 그 재해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경우 그러한 가해행위는 사업장이 갖는 하나의 위험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동료의 가해행위가 ‘하나의 위험’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업무상 재해는 공단에 궁극적인 보상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동일한 사업주에 의해 고용된 동료의 행위로 업무상 재해를 입은 경우에는 산재보험법이 정한 ‘제3자’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A씨는 보험 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 근로자인 B씨와 산업재해보상보험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라며 “제3자에서 제외돼 공단은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 행사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는 산재보험법 87조1항에서 정한 ‘제3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A씨의 성추행과 B씨의 극단적 선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구상권 행사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해석한 대법원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원심과 같은 해석이라면 사안에 따라 구체적 타당성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논리가 굳어지면 사고에서도 동료의 비난 가능성이 큰 경우라면 구상권 행사가 가능해질 수 있다”며 “이렇게 보면 사회적 위험에 관해 사업주 집단에 책임을 묻는 사회보험제도의 붕괴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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