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올여름 폭염에 이어 기록적인 폭우가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의 한 단면이라고 이를 이해해야 할까. 모두가 한 번쯤은 얼핏 들어봤을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라는 책이 떠올랐다. 1986년에 출간된 책에서 그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위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다. 그는 저서에서 앞으로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조망하며, 위험이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평준화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부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는 명제를 남겼다.

그런데 과연 그의 말은 합당한 것일까? 한 측면에서 보면 그의 명제는 타당한 것 같다. 당장 우리가 겪어 내고 있는 기후위기, 그로 인해 자연현상으로 등장한 폭염과 폭우가 모두에게 위협적이니 말이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결코 위험은 평등하지 않다.

특히 이번 수해로 인해 삶터를 빼앗긴 이들과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된 이들의 현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관련 대책도 쏟아지고 있다. 그에 따라 대책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이냐, 미봉책에 불과한 것 아니냐 등 윤석열 정부를 향한 날 선 비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필자는 이번 폭우에 희생된 노동자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지난 8일 호우경보가 발령된 상황에서도 경기도 시흥의 한 공사현장에서 빗속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철근 절단기에 감전돼 숨졌다. 그리고 같은날 서울시 동작구에서도 쓰러진 나무를 수습하던 동작구청 직원 1명이 전선에 접촉돼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왜 이런 상황에서도 작업에 투입됐을까. 왜 해당 지자체나 해당 공사현장에서는 작업을 중지시키지 않았을까. 만약의 예를 하나 덧붙여 왜 이들은 작업을 중지하거나, 거부하지 못했을까.

허무한 것은 언론보도를 찾다 보니 6월과 7월에도 폭우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6월30일에는 경기도 용인의 건설현장에서 폭우로 인해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생겨난 물웅덩이에서 발생한 익사 사고였다. 터 파기 작업으로 4미터 깊이로 파인 웅덩이에 빗물이 고인 상태에서, 희생된 노동자는 양수기 콘센트가 물에 잠길 것을 우려해 물을 빼는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달 13일 경춘선 중랑역에서 폭우가 발생하자, 선로 점검에 나섰던 코레일 소속 철도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지난주 8일 희생된 노동자들의 죽음에 앞서, 6월과 7월에 폭우로 인해 발생한 사례들을 통해 폭우에 대비해 적극적인 작업중단 지침 등의 조치가 마련됐다면 어땠을까. 분명 살릴 수 있는 노동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쯤 되면 우리 사회가 반복적인 노동자들의 희생 앞에 교훈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 여전히 ‘산업재해는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것인지, 폭우로 인해 침수가 시작되는 현장을 지나면서도 태연하게 귀가하는 국가의 최고권력자를 둔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를 믿고 각자도생에 소홀했던 개인을 먼저 탓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고용노동부는 한 언론사가 “지난 9일까지 기록적인 폭우에도 노동부가 작년과 달리 건설현장에 수몰사고 위험경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선제적 예방조치가 미흡한 현실을 지적하자, 10일에는 ‘폭우, 태풍 등으로 근로자 위험 우려가 있다면 작업을 중지하세요’라는 카드뉴스를 배포하고, 11일에는 언론보도설명을 통해 ‘호우 및 강풍(태풍)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6월부터 현장지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폭우에 대한 노동부 권고가 이전 폭염대책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통용될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폭우 피해를 예방·수습하는 과정에서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하며, 사전에 노동자들의 동의와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노동부는 사태가 급박한 경우엔 먼저 실시하고 사후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행정해석을 통해 적극 설명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제 기후위기에 따른 폭염·폭우 등 기상이변은 이례적인 상황이 아닌 상수가 돼 버렸다. 따라서 선제적인 대응과 예방을 위한 노력들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언제까지 누군가의 희생에 뒤이은 후속조치로, 그것마저 미봉책인 상황이 돼야 하는가. 폭우에서 노동자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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