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사옥 옥상 광고판과 1층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16일 오전 100여명의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가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소주와 맥주를 광고하던 옥상 옥외광고판에는 ‘노조탄압 분쇄,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철회 전원복직’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렸다.

이들은 서울 본사에서 농성을 하기까지 76일간 파업을 이어 오고 있다.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 강원도 홍천의 하이트진로 공장을 거쳐 다다른 곳이 서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운송사와 운송료 협상을 했던 화물노동자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며 고공농성으로 끝장투쟁을 선언했다.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은 왜 운전대를 놓은 걸까.

“하루 평균 12~14시간 노동, 카드빚만 쌓였다”
이직? 개조비용만 4천만원, 고정일감 하늘의 별 따기

지난 12일 강원도 홍천 하이트진로 공장 앞.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로 일한 지 11년 됐다는 박수동(42)씨는 “카드빚으로 생활한다”며 카드사에서 날아온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카드 누적 이용액은 1천500여만원, 빚을 갚고 다시 빚을 지는 생활이 반복됐다. 지난 4월 그가 신용카드로 낸 유류비는 552만원이다. 차량 할부금 340만원, 도로 이용비 50만원, 각종 차량유지비와 보험료, 운송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빼고 나니 수입에서 50여만원이 남았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제대로 못해 줘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 5시반에 공장으로 출근해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까지 주 5일을 일했다. 박씨는 “수양물류가 잘돼야 우리도 잘된다는 생각을 갖고 일해 왔다”고 했지만 11년간 저임금을 견디며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초기투자 비용이 큰 화물운송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운송사는 ‘고수익, 고소득 보장’이라는 광고를 내걸고 구직자를 유혹한다. 화물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고 각종 화물운송 자격증을 취득한 구직자는 큰 빚을 지고 중고차량이나 신차를 매입해 일을 시작한다. 더군다나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은 트럭을 ‘윙보디’로 개조해야 일을 할 수 있다. ‘윙보디’는 트럭을 개조해 적재함 옆면이 열리게끔 하는 것인데 구조나 기능에 따라 개조 비용이 2천만원에서 4천만원까지 든다.

높은 매출에 비해 순수익이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쯤 매입한 차량은 가치가 떨어지면서 가격이 낮아진다. 차를 되팔자니 찻값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손해가 막심하다. 차량을 구매하면서 졌던 수천만원~1억원의 빚을 감당하기 힘든 화물노동자는 일을 계속한다. 박씨는 “차량 할부금이 끝날 때까지 버텨 보자는 마음으로 일하다 보면 몸이 적응하고 일의 ‘노예’가 된다”며 “그렇게 일을 하다가 30~40년을 이곳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물노동자들은 “고정적인 일감을 확보하기 어려운 화물운송시장 특성상 이직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50대 화물노동자 심명철(가명)씨는 “고정적 일감이 확보되지 않으면 수입이 일정치 않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며 “일감이 확보되는 ‘고정차’ 일자리는 권리금이 1억원에 달하기도 하고 그마저도 일하던 사람이 그만둬야 그 자리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직이 어렵다”고 전했다.

15년째 동결된 운송료 “기다려 달라는 회사 믿었다”

6월 파업을 시작하기 전 노동자들은 물류사와 지난한 교섭의 과정을 거쳤다. 지난 3월 화물연대본부 대전지역본부 하이트진로지부가 결성되기 전부터 화물노동자들은 ‘상조회’를 통해 운송사와 운송료 협상을 했다.

화물노동자들이 운전하는 17톤·21톤·25톤 트럭에는 ‘하이트진로’라는 이름과 진로의 상품이 도색돼 있다. 이들이 속한 운송사 수양물류도 하이트진로가 100% 지분을 가진 하이트진로 계열사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사실상 운송료 인상 권한을 가진 하이트진로와 직접 운송료 협상을 할 수는 없었다.

15년째 동결된 운송료로 생활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화물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수양물류와 대화를 시작했다. 수양물류는 운송료 2.5~3% 인상안을 제시했다. 기대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운송사는 2008년 동결에 이어 2009년 유가 하락을 이유로 8.8% 운임을 인하한 뒤 2013년(1.2%)·2016년(3%)·2019년(3.5%) 세 번에 걸쳐 7.7%를 인상했다. 15년간 인상률이 -1.1%인 것이다. 게다가 물가·차량 가격 인상분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마이너스다.

수양물류는 상조회에 “시간을 주면 운송료를 인상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2월부터 공병 운송을 거부했고 하이트진로는 같은달 소주 출고가를 7.9% 인상했다. 그사이 수양물류의 대표가 바뀌면서 회사와 대화도 끊겼다. 새로 취임한 대표는 그간의 논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회사는 약속을 어겼다. 올해 3월, 노동자들은 지부를 결성했고 6월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5년차 화물노동자 박준영(36)씨는 “파업 이후로도 10여차례 가깝게 교섭했지만 휴일에 일하지 않는 우리에게 ‘휴일 운송료 인상’등을 제시하거나 5% 수준의 인상안을 제시한 게 전부”라며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같은 회사, 다른 임금?
소주는 맥주 운송료의 절반 받아

운송료는 절대적으로 낮기도 하지만 같은 회사 다른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문제다. 하이트진로 맥주·소주 공장은 여섯 곳이 있는데 이천·청주·마산·익산공장은 소주공장이고, 전주·홍천공장은 맥주공장이다. 맥주공장이던 마산공장은 2019년 소주공장으로 바뀌었다.

전체 500여명의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중 파업하는 조합원은 100여명이다. 모두 소주를 운송하는 이천과 청주공장 소속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운임은 맥주를 운송하거나, 운송했던(마산공장) 이들보다 현저히 낮다. 2011년 맥주회사였던 하이트와 소주회사였던 진로가 합병하면서 발생한 운송료 차이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지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소주를 생산하는 청주공장에서 안양센터까지 144킬로미터를 운행할 경우 지부 소속 조합원은 19만2천원을 받는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소주를 생산하는 마산공장에서 포항센터까지 144킬로미터를 운행했을 때 마산공장 화물노동자는 33만5천원을 받는다.<표 참조> 지부 조합원이 받는 운송료가 다른 공장 노동자 운송료의 57% 수준인 것이다. 전주·홍천공장의 맥주 운송노동자들과도 30~40% 정도의 운송료 차이가 나다 보니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지부 설명이다.

과로·과속·과적 재촉하는 저임금

이들이 모는 트레일러나 카고차량은 안전운임제 적용 제외 품목이다. 화물노동자의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 운송료를 보장하는 안전운임제는 유류비가 오르거나 내리면 운송료에 반영되도록 설계됐다. 안전운임제가 적용되지 않는 탓에 최근 유류비가 인상되면서 노동자들은 부담은 커졌다. 심명철(가명)씨도 “파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움직일 때마다 마이너스였다”며 “기름값이 (유류비 인상 전보다)한 달에 100만원도 더 나갔다”고 말했다.

기름값 폭등은 파업의 계기가 됐다. 16일 오피넷 기준 리터당 1천881원인 경윳값은 지난 5월 리터당 1천999원까지 오르면서 2천원 돌파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박준영씨는 “일을 하면 손해가 났던 상황이기 때문에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젊은 사람들이 가족을 꾸리면서 살기에는 너무 부족한 수입”이라고 토로했다. 박씨는 “이곳에 들어와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나이 드신 분들, 오랫동안 일하던 분들이 많은 이유가 젊은이들이 들어와 직장을 금세 옮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운송료는 과로와 과적, 과속을 부른다. 박수동씨는 열이 40도가 넘는 상황에서도 일을 한 경험이 있다. 박씨는 “물류센터에서 공병을 한 번 더 싣으려고 물류센터 앞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며 “차량 바퀴를 굴려야 단돈 10원이라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귀띔했다. 운송료는 이동거리와 팰릿당 병수로 계산되는데 더 많은 운송료를 받기 위해 노동자들은 팰릿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싣는다. 과적이다. 과속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돈을 많이 받기 위해 하나라도 더 하려고 속도를 올리고, 과속을 하고, 과속을 하다 보면 눈의 피로도도 높아져 과로와도 연결된다”며 “운송사와 하이트진로가 저임금을 주면서 사실상 과로·과적·과속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 12일 강원도 홍천 하이트진로 공장 인근에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차량이 멈춰 서 있다. 화물차에는 회사 광고가 도색돼 있다. <정소희 기자>
▲ 지난 12일 강원도 홍천 하이트진로 공장 인근에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차량이 멈춰 서 있다. 화물차에는 회사 광고가 도색돼 있다. <정소희 기자>

손배·가압류·업무방해금지 가처분에만 적극적인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지부의 대화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지부 관계자들은 지금껏 운송사인 수양물류와 교섭을 이어 왔다. 수양물류는 지난 6월 파업에 참가한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132명에게 “배송의무 불이행을 즉시 시정하라”며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귀하의 파업, 운송거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규정하는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문구도 함께였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11명의 조합원에게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27억7천6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현재는 조합원들의 차량과 부동산에 가압류를 건 상태다. 지난 4일에는 수양물류 대표이사가 조합원들에게 “12명을 제외하고 8일까지 복귀하면 민형사 절차를 전면 취하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교섭회피-집단해고-손배 청구-복귀자 면책회유’의 전형적인 노조파괴 수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이트진로는 “당사와 화물연대 기사들과는 어떠한 계약관계도 없으며 계약해지 자체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하이트진로는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회는 당사 근로자가 아니며 노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며 “지입차주는 근로자가 아니고 화물연대본부는 지입차주들의 연합단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노동자가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점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입차주의 근로자성에 관해 법원은 엇갈린 판결을 했다. 최근 서울고법은 화주에게 업무보고를 한 지입차주를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회사에서 고정급을 받은 부분과 경제적 전속성이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들의 화물차량에는 회사 로고가 도색돼 있고, 지정된 근무시간과 장소에 구속돼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다른 사업장에 대한 노무 제공 가능성이 제한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이트진로가 화물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업무지시를 했는지 등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화물노동자들의 화물차량에는 회사 로고가 도색돼 있고, 수양물류는 하이트진로가 100%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길게는 40년 가까이 일한 노동자들도 있어 경제적 전속성도 인정될 소지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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