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지난 4월28일 개정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고시에 근거한 ‘발생빈도가 높은 근골격계 상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이 지난달 1일 제정·시행됐다. 이 지침은 고시의 문제점을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속하고 공정한 판단이라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의 취지, 그리고 법리에 위반된 내용이 많다. 아래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첫째, 재해조사 절차에 각 조사 및 자문기간이 명시되지 않아 개별 조사 담당자의 특성과 여건에 따라 조사가 장기화될 수 있다. 재해조사 절차는 ‘요양신청서 접수→기초자료 수집→근골격계 다빈도 상병 적용기준 해당 여부 기초조사→의학자문 실시→현장조사 생략 및 필요 여부 확인→전산입력’의 과정을 거친다. 조사와 의학자문 등은 얼마의 기간으로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 사업장에서 제출 의견이 있을 경우 다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의학자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신속한 조사 판정을 위해 조사일정과 기간을 명확히 하고, 기초자료 수집 단계에서 사업주의 의견을 충분히 제출하도록 해서 의학자문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고시 적용 대상임에도 노동자에게 현장조사를 사실상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지침은 고시 적용 대상임을 노동자에게 안내해 현장조사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하는 경우 현장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한다. 붙임 서식 하단에는 “심의 과정에서 현장조사가 필요해 우리 지사에 현장조사를 요청하는 경우 현장조사가 실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는 문구는 삭제해 고시 적용 대상 노동자가 현장조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 현장조사에 대한 사업주의 이의제기권을 축소 또는 삭제해야 한다. 지침은 사업장에서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현장조사를 요청하는 경우에 “예시”를 참고해 필요성을 판단하라고 규정한다. 예시는 “직종에 대한 사업주 이의, 혼재업무에 대한 이의, 부담업무 미수행에 대한 이의, 기타 방문조사를 통해 확인이 가능한 경우”로 나누어 있다. 사실상 사업장에서 당해 노동자가 해당 직종에 근무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경우 현장조사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근무이력에 대한 세부사항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주의 이의제기에 대해 담당자는 ‘현장조사 미수행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령 고시의 대표적인 직종인 건설노동자의 경우 고용보험 일용내역서상 직종명(코드)이 포괄적이므로, 정확한 직종을 알 수 없다. 또한 건설근로자 경력증명서상 종사직종 구분도 정확한 업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원청 건설업체에서는 이런 점을 악용해 직종 불명확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장조사 등 장기간 조사가 실시돼 사실상 추정의 원칙을 도입한 취지는 형해화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충실한 기초자료 수집 후 최초 의학자문 단계에서 현장조사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진술이 아닌 명확한 서류에 근거한 직종의 이의제기만 수용하되, ‘업무상 질병 현장조사 매뉴얼’에 “어떻게 직종 조사를 하는지”의 내용을 만들어 추가해야 한다.

넷째, 불합리한 근무기간 산정 지침을 변경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무기간을 산정할 때 “건설현장 일용직은 200일을 근무한 경우 1년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이는 건설현장 실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건설노동자의 경우 2004년 이전 고용보험 일용근로 내역은 없다. 또한 한 달에 20일을 일하든 업체 사정상 10일을 일하든 노동자의 직종과 업무부담은 변함이 없다. 정규직 제조업 노동자가 한 달에 10일 일했다고, 해당 월은 10일만 일하는 것으로 업무 부담을 판단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최소 고용보험 일용근로내역서에 타직종으로 가입한 적이 없다면, 직무의 연속성을 인정해 판단해야 한다. 산업재해재심사위원회에서도 건설노동자의 이런 특수성을 반영해서 누적 기간을 합산해 업무관련성을 인정한 바 있다.

다섯 번째, 산재보험법의 법리 및 해석과 반하는 내용은 수정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조선 용접공 4년, 조선 비계공 2년, 조선 배관공 7년을 근무한 경우 발병된 경추간판탈출증의 예시를 제시하고 있다. 이 경우 ‘적용 직종(a)→비적용 직종(b)→적용 직종(c)→상병 진단’으로 근무한 경우 비계공 근무기간 2년이 제외될 뿐만 아니라 적용 직종인 용접공 4년도 제외된다. 결국 배관공 7년만 고려해 업무관련성을 판정(결국 부정)한다. 공단의 논리라면 예시에서 용접공으로 40년을 일했다고 하더라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는 업무상 상당인과관계 법리뿐만 아니라 질병의 발현 과정이라는 의학적 지식과도 배치되는 논리다. 비적용 직종 전 적용 직종에 종사한 것이 명확한 경우에는 당연히 이를 포함해 판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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