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달 말 경총은 ‘중대재해 발생시 고용부 작업중지 명령의 문제점 및 개편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경총의 작품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보고서는 왜곡과 과장으로 점철돼 있다. 보고서는 지금의 작업중지 명령이 감독관의 재량에 의해 남발되고 있고, 복잡한 해제절차로 작업중지 기간이 장기화하고 있으며, 강력한 제재에 비해 산재예방 효과가 미미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작업중지 명령의 기준 요건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명령절차를 세부적으로 정해야 하며, 작업중지 명령 해제 심의위원회 절차는 삭제해서 작업중지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언제나처럼 ‘선진외국’의 사례를 들며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중지를 법률로 규정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조목조목 반박할 가치가 있는 보고서인가 하는 회의가 들지만, 수많은 언론이 경총의 주장들을 받아써 주고 있으니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먼저 일선의 감독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자. 과연 지금 재량껏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 말이다. 작업중지 범위는 물론이고 명령을 내리는 행위 자체도 감독관 개인이 결정하지 못한다. 지방고용노동청이나 지청 차원에서 법규정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작업중지 장기화의 주범이라고 주장하는 작업중지 명령 해제 심의위원회는 사업주의 해제신청이 있으면 최대 4일 안에 반드시 개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경총 보고서는 작업중지 명령의 산재예방 효과가 미미하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주장은 그 문장 자체로 해괴하다. 중대재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작업을 중지시키는데도 재해가 발생한다는 말인가? 아. 그런 일이 아주 가끔 벌어지기는 한다. 작업중지 명령을 위반하고 업무를 재개하는 사업장에서.

경총이 좋아하는 선진외국의 사례를 보자. 경총은 보고서에서 일본·독일·영국·미국의 관련법 및 국제노동기구(ILO) 근로감독 협약까지 인용하며 어디에도 ‘중대재해 발생시 동일한 작업 등’을 작업중지 명령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들 법규정을 나열해 놓고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정상적인 인지 체계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눈에 외국과 우리 법의 진짜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선진외국’에서는 특정 상황에 한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법은 사람이 죽어야만 작업중지 명령을,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차이 말이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2020년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작업중지 명령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근로감독관의 재량으로 행할 수 있는 행정조치였다. 선진외국들의 법규정처럼 말이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과정에서 즉각적인 작업중지는 중대재해 상황에서만 명령할 수 있는 것이 돼 버렸다. 그 결과 현행법상 중대재해 발생 상황을 제외하면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조건은 ‘사업주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해 현저한 유해·위험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상황에 대해 고용노동부 장관이 시정조치를 명했음에도 사업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뿐이다. 일반적인 행정조치로서의 작업중지 명령은 이렇게 무력화됐다. 고작 남은 것이 중대재해 발생시의 작업중지 명령뿐인데 경총은 그마저도 과도한 제재라며 완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4대강 물을 모조리 빨아들일 수준의 아전인수로 뒤덮인 보고이지만 정부에 의한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 결국은 사업장의 자율적인 안전보건관리가 정착해야 한다는 점이 틀린 지향점은 아니다. 그러나 자율적인 안전보건관리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하면서도 자율적인 안전보건관리에 합리성과 전문성을 확보해 줄 법·제도, 그만큼 유연하고 포괄적으로 재편해야 하는 감독기관의 역할과 권한 같은 것들 말이다. 안전보건관리에 있어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실질적 권한의 획기적인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화에 대한 각 주체들의 의지와 진지한 태도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경총의 태도는 오히려 자율적 안전보건관리가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회의가 들도록 만들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도 모자라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최소한의 조치마저 과도한 제재라며 생떼를 쓰는 경영자들에게 어떻게 자율관리를 맡길 수 있겠는가. 기업의 자율성과 생산활동은 노동자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처럼 주장하면서, 감독관의 재량권과 행정조치는 철저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자들과 어떤 대화가 가능하고 어떤 변화를 모색할 수 있겠는가.

보고서의 제목을 다시 보자. ‘중대재해 발생시 고용부 작업중지 명령의 문제점 및 개편방안’ 경총에게 고용노동부의 ‘노동’은 이미 지워진 단어인 것일까? 윤석열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신이 난 경총은 이 엉터리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업중지 명령 개선방안을 정식 건의하겠다고 한다. 경총은 진정으로 산재 사망자를 줄이고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마음이 있다면 그 작업을 당장 중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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