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혜 안전관리 노동자

조선업 구조조정을 계기로 많은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났다. 이들 중 일부는 경기도 반도체 공장, 울산·여수·대산(충남)의 석유화학산업단지, 발전소 같은 플랜트 건설현장으로 떠났다. 이들이 건설현장으로 떠난 첫 번째 이유는 임금이다. 임금 하락이 발생한 조선소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안전관리다. 조선소에서 플랜트로 넘어온 작업자들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들 대다수가 조선소에 비해 플랜트에서 일하는 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한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 할 수 있는 플랜트 현장이 좀 더 낫다는 이야기다. 조선업이나 건설업 특성상, 산재사고 규모와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산재로 작업이 중지되면 돈을 벌지 못한다. 심지어 장애를 얻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니 안전한 사업장을 더욱 선호할 수밖에 없다.

조선소는 제조업 사업장이다. 하지만 산업 특성 때문에 건설업 안전기준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선박 한 척 크기가 웬만한 건축물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률상 조선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관리비 계상 기준만 하더라도, 건설업처럼 프로젝트나 진척률에 따른 계상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조선업이 사업장 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선박 제작을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건설업처럼 세세한 규정이 부족하다. 이렇다 보니 조선소 안전관리는 건설업에 비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27일부터 시행하면서 모든 조선소에서 안전관리를 외치고 있다. 한 조선소가 하청노동자 연쇄 산재 사망사고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작업중지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수천억원의 안전비용을 투자하겠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선 바뀐 게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전교육은 직영(원청 직원)과 일부 1차 하청에 간신히 적용되는 수준이다. 실제 일을 하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은 형식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다.

화기·비계(발판)하부·밀폐공간 감시인, 크레인 신호수와 같은 안전 보조인력 배치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고정식 크레인 설비는 크레인 이용과 관련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배치되지만, 그 외 영역에선 감시인들에 대한 기본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석유화학·반도체 플랜트의 경우 화기·비계(발판)하부·밀폐공간 감시인, 크레인 신호수들에 대한 별도의 안전교육을 이수하고 교육 내용과 관련한 시험을 통과해야 현장에 배치되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건설과 조선소 최대 재해인 추락사고 대응도 마찬가지다. 비계(발판) 작업시 비계가 올바르게 설치됐는지 검사를 하고, 사용허가 태그를 붙어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소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워낙 많은 하청업체들이 비계(발판)를 설치하면서 어떤 업체에서 설치했는지 파악하기 힘든 상황도 간혹 생기고 있다. 원청사가 전문 안전감시 인력을 고용해 비계 검사를 비롯한 안전관리를 하지 않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관리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조선소 역시 화학물질을 다루는 산업이다. 선박과 도장작업시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한다. 보온(배관, 설비 등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단열재를 붙이는) 과정에서 공기 중 보온재 부스러기 흡입 문제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작업자들이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고, 사고 발생시 초기대응·직업병·유해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플랜트 산업군처럼 전문 안전관리자를 고용하기보다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안전부서에 배치하는 사례도 있다. 아무리 정규직들이 안전관리를 맡는다 한들, 전문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소용없다. 당연히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잘 되지 못한다.

산재 대응 문화도 후진적이다. 예컨대 모 조선소에서 LPG 절단기 사용 작업 중 폭발사고로 작업자가 숨지는 일이 있었다. 사고가 나서야 비상통로를 설치하거나, 화기감시자를 추가 배치하거나, 가스류 보관법이 개선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수준이다.

조선소 내 안전관리 옴부즈맨 시스템도 형식적이다. 현장 작업자들이 위험요소 발견시 회사에서 만든 앱에 제보하더라도, 위험요소 제보 사진을 삭제하라며 오히려 제보한 하청노동자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 제보를 받으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형식적인 안전관리만하고, 실제 인원투입이나 피드백은 전무하다. 이러니 어느 노동자가 조선소에 더 붙어 있으려 할까?

건설업 역시 재하도급 문제가 있긴 하다. 하지만 원청사는 안전계획수립과 관리·감독을 하고, 하청업체가 실무를 도맡는 틀은 갖춰져 있다. 또한 각 공정에 따른 전문업체에 하도급 주는 기본적인 꼴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조선소 하청은 인력공급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원청에서 관리·감독을 강화한다고 해도, 다단계 하청 구조에선 안전교육과 책임소재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다단계식 하청에 대한 개선책도 고민해야 할 영역이다.

조선소의 저임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임금만 올라서는 안 된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현장이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조선소로 노동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안전관리 노동자 (heine03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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