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전 세계가 역대 최악의 폭염을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역대 최악’이라는 기록이 곳곳에서 수시로 경신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예상과 경험은 기후위기 앞에서 쉽게 힘을 잃고,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앞에서 전례 없는 재난을 겪고 있다. 연일 폭염특보가 울리는 한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더위에 쓰러지는 노동자의 소식은 매년 끊이지 않는데, 기업은 언제나 그렇듯 눈 깜짝하지 않고, 정부는 한참 부족한 수준의, 그마저도 의무가 아닌 권고만 하며 일단 이 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고온에 의한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규정한다.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고용노동부령, 즉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하는 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위임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안전보건규칙은 ‘고열’을 ‘열에 의하여 근로자에게 열경련·열탈진 또는 열사병 등의 건강장해를 유발할 수 있는 더운 온도’라고 정의하는데(558조1호), 이상하게도 ‘고열작업’은 위와 같은 정의에 따른 고열이 발생하는 작업 일체가 아닌, 용광로, 가열로, 갱내 등 몇 개의 특정 장소에서의 작업으로 한정하고 있다(559조1항). 다만 “그 밖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역시 고열작업으로 보아, 냉방장치 가동 등 온도조절, 작업시간 조정 등 고열장해 예방조치를 하도록 열어두었다(559조1항13호). 그런데 놀랍게도 노동부가 위 규정(13호)에 따라 고열작업으로 인정한 경우가 확인되지 않는다. 용광로, 가열로, 갱내 등 특정 장소 작업 외에도 고열작업으로서 건강장해 예방이 필요한 경우를 노동부 장관이 추가할 수 있도록 마련한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시킨 것이다.

노동자가 고열 속에서 작업하는 현실의 장소는 도처에 있는데, 노동부가 만든 규칙에 따르면 그것은 ‘고열작업’이 아니다. 따라서 사업주는 건강장해 예방 조치를 취할 의무가 없다고 법을 손쉽게 읽는다. 법정 근로시간을 무력화할 수 있어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정해진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를 노동부가 널리 남발하고 있는 상황과 비교할 때, 노동부의 재량과 의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명해 보인다. 노동부에게 노동자의 건강은 예외적인 사정일 뿐, 사업주에게 한 톨의 의무를 더 얹는 ‘법과 원칙’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기억해야 할 장면이 있다. 2014년 12월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논의가 있었다. 전 노동부 장관이기도 했던 당시 안경덕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 24조(현행법 39조)에 고온·저온에 관한 보건조치 의무가 규정돼 있기 때문에 폭염·혹한에 대한 의무를 추가로 법에 정하는 것은 “중복 규제”라며,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에 대한 대책을 안전보건규칙에 빠짐없이 담겠다고 말했다. 고영선 차관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즉 입법자가 만든 산업안전보건법상 고온작업에 대한 보건조치에는 폭염 등 날씨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당연히 포함되므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확신에 찬 답변을 했던 이들 중 한 명은 장관까지 하는 등 7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때마다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공사장에서, 물류창고에서 타들어 간다. 정부는 입법자가 만든 법을 거스르는 안전보건규칙을 고집하면서, 매년 선심 쓰듯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 따위를 내민다. 노동부가 만든 규정 한쪽에서는 폭염에 노출되는 작업을 유해한 작업이라며 산업재해 인정 근거로 명시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예방 조치를 강제할 만큼 심각한 것은 없다는 식이다. 눈치 빠른 기업은 인간이 아닌 부품을 바꿔 끼우며 누울 자리를 펼쳐 눕는다.

정부는 걸핏하면 노동자에게 ‘법과 원칙’을 운운하며 위협한다. 노동자를 해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기업을 향해 엄정한 ‘법과 원칙’이 언급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던가. 굳이 상기하자면, 모든 시민은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이러한 헌법상 기본권을 구체화한 법률 중 하나가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이 법에 규정된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의무는 노동자의 신체의 완전성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인데, 신체의 완전성은 인간 존엄의 기반이 되므로 이를 보호하는 것은 중요한 공익에 해당한다. 이것이 정부의 ‘법과 원칙’이어야 한다.

최근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옮기면, 지난 5월20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이미 확인된 온열질환자는 885명(사망 7명)으로, 매년 그 수가 늘고 있다. 피해 발생은 실외, 실내 가리지 않고, 낮시간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성별과 연령도 다양하다. 이렇듯 모두가 구체적으로 아는 위험이고,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있다. 의무를 부여하고 감독할 구체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가 제 할 일을 하지 않아 또다시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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