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빨리 온 여름이 맹렬하다. 6월부터 시작된 더위가 정점에 달했다.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는 기후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요즘이다.

더위는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비정규 노동자만 봐도 그렇다. 비정규 노동자는 냉난방 시설이 미비한 일터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휴식·휴가 등 쉴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며, 소득이 낮아 주거 및 에너지 지출을 감당하기 버겁다.

더위를 참지 못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지난 6월23일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폭염대책 마련과 성실교섭 촉구’를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묵묵부답이다. 지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물류센터 내 평균 온도는 31.2도이고 습도는 59.48%에 달했다. 휴게실에 냉방 시설이 있다고 하나 공간이 충분하지 않고, 휴게시간이 부족해 사용하기 힘든 실정이다.

건설노조는 현장 편의시설 개선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달 26일이다. 건설 현장은 전통적으로 작업환경이 열악하다. 건설노조는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건설 현장 23곳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현장당 평균 172명의 노동자가 일하는데, 휴게실과 화장실은 각각 평균 2.5개에 불과했다. 게다가 휴게실의 21.7%에는 냉방시설이 없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건설 현장에서 열사병 의심 사망사고가 5건 발생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택배·배달·경비·청소·조리 노동자 등의 목소리가 뜨겁다. 그들의 요구는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 중 대다수가 노동 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조직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변화를 요구해도, 무수한 이가 죽고 다쳐도 비정규 노동자의 일터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2019년,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계단 밑 가건물 형태의 휴게실에서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22년,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곰팡이와 매연으로 가득한 지하 휴게실에서 쉬고 있다. 샤워실 설치를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는 누군가에게 한낱 소음으로 치부됐다. 이는 연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13개 대학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샤워실 개선,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한 시급 인상 등을 요구하는 중이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어느 조선소 조리원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용역업체 소속인 조리원은 자신이 조리실과 작업 도구에 대해 어떠한 권한도 없는 현실을 통탄했다. 일하는 사람에 맞게 공간과 도구가 구조화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야 안전과 능률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원청은 멀었고 하청은 무기력했다. 원청은 실질적인 사용자성을 부정한 것이고, 하청은 원청 소유의 공간과 도구를 어찌할 수 없다며 회피한 것이다.

일터는 단순히 누군가의 사적 소유물만은 아니다. 노동자가 일하고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일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협의하며,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바람직한 일터의 모습은 그 속에서 부대끼며 생활하는 노동자가 가장 잘 안다.

정부는 노사 자율을 운운하며 뒷짐이나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장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각종 안전 수칙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다. 사고 발생 시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덧붙여 작금의 사태를 단지 노동 문제로만 접근해선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기후위기가 계속되는 한 아무리 노사가 잘 협력하고 정부가 애쓴다고 해도 노동자의 안전을 온전히 담보할 수 없다. 매년 찾아오는 여름처럼 일터의 위험도 매년 반복될 게 뻔하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내일의 일이 아니다. 노동 문제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일이다. 물론 노동과 환경 사이의 딜레마는 풀기 힘든 난제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서는 안 된다. 노동과 환경은 이어져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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