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닿을 일 없이 … 이해할 수 없다.”

2016년 KBS에서 방영된 단편드라마 <아득히 먼 춤>에서 연극 연출가 신파랑이 짧은 인생을 살다 남기고 간 글의 일부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하루 전 파랑은 살아생전 가까웠던 동료 최현을 찾는다. 최현은 좀체 이해하기 힘든 파랑에게 날 선 말들을 던지는데, 파랑은 묻는다. “이해하기 싫은 것 아니고?”

닿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닿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영영 닿을 수 없다. 노동현장에서 최근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 말을 체감한다. 10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노동자들이 참다못해 나선 임금인상 투쟁에 일부 정규직 노동자가 “하퀴벌레”라고 조롱한다.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하청노동자 개개인에게 손해배상 청구 등 철저히 책임을 묻자고 가시보다 날카로운 말로 하청노동자들을 할퀸다.

거제에서 410킬로미터 떨어진 서울 서대문구 한 대학 캠퍼스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연세대 재학생 3명은 시급 440원 인상과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자신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형사고소하고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치료비를 포함해 640여만원이다. 몇 해 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한 정규직·청년들의 반발도 같은 선상에 있다.

이런 문제가 반복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의원들과 함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점거농성 중인 유최안 부지회장을 만났다. 긴 몸을 구겨 넣고, 편히 용변조차 볼 수 없는 공간에서 20일 넘게 버티는 모습을 실제 보면서 ‘왜 그는 이런 투쟁을 자처했을까’란 물음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23년 동안 도장노동자로 일하며 롤러 질을 반복해 휜 손가락을 보면, 그가 참고 견뎠을 지난 세월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아프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 참고 버텼다”고 증언하는 하청노동자를 앞에 두고 부당한 떼를 쓴다고 말 할 사람은 많지 않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호를 이해하려면 하청노동자의 이야기를 물어야 한다. “(멸시당할까 봐) 음식점을 갈 때는 집에 갔다가 옷을 갈아입고 사복차림으로 간다.” “바퀴벌레니 박멸해야 한다느니 말을 듣고 조선소를 다녀야 하나. 진짜 (스스로가) 한심하더라. 어떨 때는 다른 조선소 직영으로 일하는 내 누이들도 싫어지더라.”

그들이 전하는 말 속에 담긴 떨림을 느낀다면 하청노동자의 삶, 그가 느끼는 울분에 닿을 수 있다. 닿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온 세계를 깨고 나와 다른 이를 만날 수 있다.

혹여 그럼에도 하청노동자 혹은 청소노동자의 투쟁에 공감하기 어렵다면 신파랑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에게 전했던 대사를 빌리고 싶다. “이해하기 싫은 건 아니고?”

김현옥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장은 재학생이 분회를 고소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공부에 방해가 됐다니 어떻게 하겠나 … 학생은 학생 입장에서 (고소를) 한 거니깐 이해를 해야죠”라고 답했다.

닿으려 노력한다면 답이 나올 것이다. 물량 변동에 따른 인력 수요를 탄력적으로 대응하려 정규직보다 하청노동자를 늘렸고, 다단계 하청 구조 속 협력업체 본공은 10년 넘게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물량팀의 일당은 하루 17만~18만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훨씬 상회하지만 불안 속 미래를 사는 대가란 사실들 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