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산재 인정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엄격하고 높은 잣대를 적용해 부당한 불승인이 반복하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노동건강정책포럼 소속 전문가들이 산재보험 승인 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편집자>

박다혜 변호사(노동건강정책포럼)
▲ 박다혜 변호사(노동건강정책포럼)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소속 기관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질병판정위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의 위원이 비상임으로 심의에 참여한다. 법률·의학·산재보험 제도 관련 전문가들이 매달 한 번가량 회의를 소집해 해당 위원회를 구성하는 식이다. 단순히 비상임위원이 다수인 상태로 제도가 운영된다는 지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심의에 참여한 판정위원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는 강력한 비밀주의에 더해, 판정의 자의성을 통제하고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평가나 견제가 안타깝게도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비상임위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제도의 특성과 만났을 때 판정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간다.

처음 질병판정위 제도를 접했을 때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기억한다. 필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외에도 여러 법령에 따라 재량권을 행사하는 다수의 행정청 및 관련 기관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산재보험 제도 운영 방식의 이례성에 크게 놀랐다.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닌, 일하다 죽거나 아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공적보험을 운영하는 조직이기에, 조속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심의에 참여한 판정위원 명단과 심의회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현재는 당사자가 요구하는 경우에도 위원 이름이 가려진 심의위원별 의견이 제공될 뿐이다. 업무상질병판정서 외에는 심의에 참여한 위원들 간에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알 길이 없다. 심의위원별 의견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더라도 결론만 한두 문장으로 기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판단을 한 것인지, 혹시 기재된 내용이 전부인지, 즉 제시할 근거 없이 그러한 판단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깜깜이 판정인 것이다. 멀리 갈 것 없다. 고용노동부 소속기관인 노동위원회 심문회의 속기록을 보면, 운영상 다를 이유 하나 없는 질병판정위가 얼마나 유난스럽게 이례적인지 알 수 있다.

둘째,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처분이 법원에서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아 취소되는 경우 판결 이유를 공유해 위원들이 주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 질병판정위 내지 개별 위원들에 대한 사후 평가와 지속적 교육도 필요하다. 공단 처분의 위법성, 특히 처분의 근거가 된 질병판정위 판정이나 역학조사 등의 하자를 문제 삼아 위법성을 인정한 판례가 계속 나오는데도 질병판정위는 되돌아보지 않는다. 이에 명백한 사실오인조차 시정되지 않은 채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법이 천명하고 법원이 구체화한 산재보험 제도 취지와 규범적 평가 방식이 무시되기 일쑤다. 우리 국민은 법원을 통해 시정된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이 아무런 반성 없이 반복되는 것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끝으로, 산재보험 제도를 이용한 국민들의 각 질병판정위 내지 개별 위원들에 대한 평가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재해자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나 진술을 강제로 끊어 버리는 등의 문제부터, 사실관계 또는 미리 제출된 자료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거나 법령과 규칙 등 판정의 기준이 돼야 하는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심의에 참여하는 문제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평가 제도는 다른 위원(회)에게 모범이 되는 사례를 취합해 공유하고 서로를 독려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참고할 만한 사례는 변호사협회가 시행하는 법관 평가 및 검사 평가 등이 있다. 비록 특정 직역단체에서 시행하는 제도지만, 독립성과 전문성이 있는 이들에 대한 평가 제도도 충분히 운영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선례다.

산재보험은 일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공적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제도다. 이와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해 많은 이들의 애씀과 헌신, 투쟁이 안팎에 자리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신뢰의 문제가 눈앞에 있다. 불행히도, 신뢰받지 못하는 행정은 법원으로 가기 전에 거치는 길목으로서의 의미로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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