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산재 인정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엄격하고 높은 잣대를 적용해 부당한 불승인이 반복하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노동건강정책포럼 소속 전문가들이 산재보험 승인 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편집자>

▲ 양선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노동건강정책포럼)
▲ 양선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노동건강정책포럼)

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파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면 주치의 진단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자문의의 소견으로 불승인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주치의는 환자의 증상·징후와 의학적 검사, 그리고 영상검사 등을 통해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자문의는 노동자가 진료받은 기록과 영상소견만으로 주치의 진단을 인정할지 말지 판단한다. 누가 더 정확할까? 이런 문제가 왜 생기는 걸까?

주치의와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의 판단이 다를 경우 누가 틀린 것인가? 환자에 대한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실제로 아프거나, 꾀병이거나 둘 중 하나다. 의사가 판단할 때 경우의 수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자문의 소견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첫째는 주치의가 실력이 없어서 환자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주치의가 없는 질병을 있다고 했을 가능성이다. 주치의 진단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주치의가 제대로 진단을 했지만 자문의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경우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수학처럼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듣고 문진해 어떤 질병이 의심이 된다는 추정을 하며, 추정하는 진단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검사 같은 다양한 검사를 수행한다. 그러나 영상검사 등이 완벽하게 모든 소견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상검사 소견은 판독하는 의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주치의는 모든 소견을 종합해 판단하고 치료방침을 세운다.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증상이다. 근골격계질환은 환자가 증상을 느껴야 환자가 되고, 환자가 증상이 없으면 병원을 찾지 않는 대표적인 질환이기 때문이다. 영상의학 전문가들 또한 항상 임상적인 소견에 비춰 결과를 해석하라고 말한다.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도 매우 유용한 도구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50세 이상 일반인구집단의 35%가 퇴행성 반월상 연골판 파열 소견을 보였다는 연구나, 회전근개 파열이 있는 환자의 일부에서만 증상이 나타난다는 연구처럼 MRI에서 소견이 있음에도 증상이 없는 경우가 자주 있다.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서 MRI 소견이 음성인 연구결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MRI의 민감도가 대체로 90%를 보고한다는 것은 양성이어야 할 검사결과가 잘못돼 음성으로 나오는 일 또한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의사 자격증이나 전문의 자격증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교육과정이나 수련 과정을 거치고 시험을 통과해야 취득할 수 있다. 자격증이 있다는 것은 환자를 진료하고 진단하며 치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근로복지공단은 자문의 제도를 둬 주치의 진단을 의심하고 정확한지 정확하지 않은지를 판단하는가? 이것이 합당한 처사인가? 주치의와 자문의 의견이 다른 경우에 그 부담은 왜 노동자가 모두 뒤집어써야 하는가? 노동자는 아플 수는 있지만 자신의 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전문가의 의견 차이를 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가?

근골격계질환 진단에 있어 가장 존중돼야 하는 것은 환자의 증상과 주치의 소견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주치의 소견을 무시하고, 자문의 제도로 주치의 진단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주치의를 무능하거나 사기 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는 전문가를 불신하는 사회로 귀결된다.

또한 주치의와 자문의 소견이 달라서 생기는 부담은 모두 환자인 노동자의 몫이 된다.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파서 일을 못하는 상황에서 치료비까지 감당하게 하는 것은 노동자를 생존권 밖으로 더욱더 내모는 행위이다. 노동자가 무슨 잘못인가? 아픈 것도 죄인가?

근로복지공단은 주치의 진단을 존중해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바란다. 최소한 자문의가 주치의와 소통하는 절차를 마련해 주치의 진단을 존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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