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지난해 4월 비준한 기본협약 3개(29·87·98호)가 올해 4월20일부터 발효했다. 이들 협약의 국문본은 국가법령정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번역의 질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기계적으로 번역하면, 의도치 않게 협약의 의미를 왜곡함으로써 그 실질적 이행을 가로막게 된다.

‘결사의 자유 및 조직할 권리의 보호에 관한 협약’(Freedom of Association and Right to Organise Convention) 87호가 대표적이다. 국가법령정보 사이트는 “조직할 권리(Right to Organise)”를 단결권으로 번역하는데, 이렇게 되면 한국적 맥락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87호의 ‘조직할 권리’를 헌법 33조 노동 3권의 하나인 단결권으로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말하는 단결권의 단결은 머리띠에 있는 “단결! 투쟁!”의 단결이 아니다. 헌법상 단결권은 단체로 조직할 권리(right to collectively organise), 즉 단체조직권을 말한다. 단결권의 실질적 의미인 단체조직권의 단체는 조직이나 기관 같은 명사가 아니라 ‘단체로’라는 부사로 기능하면서 ‘조직한다’는 동사를 꾸민다. 다시 말해 노동 3권에서 쓰이는 한자말인 단체는 우리말로 ‘떼를 지어(collectively)’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개별적으로(individually)’ 무력하기 때문에 시민적 개인의 권리, 즉 시민권이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1차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떼를 지어야(단체로)’ 자기 조직을 만들 수 있고,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으며, 마침내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증명해 온 과정이었다. 따라서 헌법의 노동 3권은 노동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떼를 쓸 수 있는 자유’를 권리로 보장해 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조직결성과 교섭, 그리고 행동은 노동 3권의 결과로 일어나는 행위일 뿐이다. 노동 3권의 핵심은 조직과 교섭과 행동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전제 조건, 즉 ‘떼를 이루는’ 자유를 말한다. 따라서 헌법의 노동 3권이 말하는 ‘단체’는 문법상 명사로서의 조직(organization)이 아닌 부사로서 떼를 지어(collectively)가 되는 것이다.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은 일본말에서 유래했는데, 중국에서는 집체담판과 집체행동이라 한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협약 87호가 노동자만이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보장되는 국제기준이기 때문이다. 87호가 말하는 결사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와 조직할 권리(right to organise)의 향유 주체는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다. 87호 2조는 “노동자 및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조직을 설립하고 해당 조직의 규칙만을 따를 것을 조건으로 해 그 조직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87호 11조는 “이 협약이 시행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 회원국은 노동자 및 사용자가 조직할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적절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상 ‘노동 3권’의 향유 주체는 사용자를 배제한 노동자 혼자지만, 협약 87호상 ‘결사의 자유’와 ‘조직할 권리’의 향유 주체는 노동자와 사용자 양자다. 따라서 헌법 33조가 말하는 ‘단결권’과 ILO 87호 협약이 말하는 ‘조직할 권리’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이런 이유로 협약 87호의 ‘조직할 권리’를 ‘단결권’으로 번역한 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결사의 자유와 조직할 권리가 사용자도 향유하는 권리임을 감안할 때 87호 비준으로 사용자의 권리가 약화됐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사용자단체에 대해서도 정부의 개입을 금하는 것이 87호의 요체다.

87호 번역에서 하나 더 지적할 문제는 3조2항이다. 국문본은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삼간다”고 번역한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공공기관’(public authorities)의 정의다. 국가법령정보 사이트에서 ‘공공기관’을 검색하면 법률 2개가 뜬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정보공개법’다. 당혹스럽게도 두 법이 말하는 공공기관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

공공기관운영법에서 말하는 공공기관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서 공공기관은 공기업 같은 공공법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정보공개법에서 말하는 공공기관에는 공공법인은 물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도 포함된다. 재미난 점은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에서는 정부기관(정부조직법·지방자치법·지방교육자치법의 적용 대상)과 공공법인(공공기관운영법·지방공기업법의 적용 대상)을 나눠 놓았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87호 3조2항이 말하는 public authorities는 공공법인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국문본의 주어를 공공기관에서 국가기관으로 고쳐야 한다. 그래야 87호가 말하는 노사단체의 권리를 방해하지도 말고 간섭하지도 말아야 하는 주체가 국가기관인 게 분명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법률가 경력을 가진 세 번째 대통령이다. 법률가 대통령의 연이은 등장은 일만 생기면 법에 기대려는 우리 국민의 수준과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인 법치(the rule of law)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률 용어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법 앞의 평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용어가 애매모호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법 적용이 이뤄진다. 독재의 토대인 ‘법을 이용한 지배’(the rule by law)가 작동하는 것이다. 법을 이용해 국민들을 단죄하는 검사 경력이 사회생활과 직업경력의 전부인 대통령 치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