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합의 이후 국민행동 등 대응 준비 본격화…국회비준저지비상대책위 결성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22일 토요일 오후, 한일투자협정(BIT) 체결을 위한 협상이 최종 타결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일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9차 본회의가 열리는 동안 국내 노동사회단체들은 매일 일본 언론의 홈페이지를 통해 체결여부를 확인하던 때였다.

민주노총, 전농 등 51개 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한일투자협정이 체결되기 전부터 "매우 중대한 경제현안 중의 하나인 한일투자협정을 비공개적으로 조속히 추진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그런데 결국 진보진영이 현실적으로 즉각 대응에 나서기 힘든 연말 토요일 오후 한일투자협정 타결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 비공개로 진행된 협상의 문제점
지난 2년간 진보진영은 국민행동을 중심으로 한일투자협정에 따른 무제한적인 투자자유화의 위험성과 공공성 침해, 그리고 노동권, 문화, 환경 훼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해왔다. 이와 관련해 국민행동은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한일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밀실협상 규탄"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정보공개를 요구서를 외교통상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쪽은 "국제협정은 체결되기 전에 공개하지 않는게 관례"라는 이유로 공개를 회피했으며, 체결 이후에는 "국제협정은 영어로 체결하게 돼있어 번역과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여부를 검토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전문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지난해 4월 캐다나 퀘벡에서 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반대해 대규모 집회 등 자본의 권리를 극대화시키는 최근 국제협정에 대한 각국 민중들의 반대가 거세짐에 따라, 국제협정을 체결하는데 있어 극도의 보완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강익구 운영실장은 한일투자협정이 체결되기 며칠전인 지난해 12월13∼15일까지 일본노동연구기구(JIL)이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한일 노사정 6자회담에 참석했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일본정부쪽 관계자들로부터 한일투자협정 협상이 막바지에 다달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회담의 주제는 직업병에 관한 내용이 주였으며, 한일투자협정에 대한 부분은 기타토의에 간단하게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강실장은 한일간 가장 주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한일투자협정이 기타토의로 빠진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출국전에 사전정보가 없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실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일투자협정에 대해 한국정부가 정보공유를 하지 않는데 대해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쪽 관계자로부터 "굳이 일본까지 와서 그런 말씀을 해야겠냐"는 질책성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고 한다.

강실장은 또한 이때 일본노총(렝고)을 방문해 일본노총이 외무성 관계자들과 만나 한일투자협정의 논의 진척사항에 대해 논의한 사항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잘 파악할 수 없었던 논의사항에 대해 바다 건너 일본까지 가서야 들을 수 있었던 것. 렝고쪽 관계자는 외무성쪽에 "노동권을 제약하려는 협정에 대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일투자협정, 어떤 효과를 갖고 올 것인가?
그러나 어쨌든지간에 협상이 타결된 마당에 협상 과정의 비공개성만 문제삼기에는 이제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주목할 점은 그렇게 비공개로 진행된 협상에서 타결된 한일투자협정 내용이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협상과정에서 노동계가 가장 문제를 삼았던 부분은 이른바 '진지조항'이었다. 한국의 활발한 노조활동이 기업활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본쪽이 한국에 진출한 일본기업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할 경우 한국정부가 직접 개입해 진지하게 해결하겠다는 '진지조항'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국제협상기획단 시민석 과장은 "국민행동쪽에서 노동문제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노사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내용이 문제될게 없을뿐더러, 전문에 들어간 선언적 의미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시민석 과장은 "협상 초기 일본쪽에서 노사문제에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라는 요구를 우리가 받아들였다면 비난을 감수하겠지만, 우리 정부는 최후까지 강력하게 방어해 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타결된 내용에선 '진지조항'은 제외됐으나, 전문에 "양국의 자율적 노사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며"라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국민행동 노선호씨는 "문구는 대강대강 처리됐지만, 국가간 협정에서 노사문제가 언급되는 경우는 없다"면서 "노사관계에 대한 추상적인 문구를 포함시켜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어떤 노동탄압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한일투자협정에 따른 효과를 선전하면서 '고용창출'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계내에서도 정부의 선전에 "올해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용창출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투자협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단기성 투기자본의 비율이 높아지고, M&A에 의한 고용유지 효과를 거론할 수 있겠으나, 선진경영기법의 이름 아래 고용은 축소되고 비정규직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93∼95년 사이에 100대 초국적 기업들의 세계 매출액이 25% 증가했으나 그들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수는 580만명중 4%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나와있어 '고용창출 효과'를 비판하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94년 페소화 위기도 당시 미 국내금리 상승으로 멕시코내 외국투자자본이 급속도로 유출되면서 일어났다는 분석도 생각해볼만하다.

투자협정에는 투자자를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 조항에 의해 우리 정부가 특정한 해외직접 투자가 자국의 국민경제에 필요한지 심사해 진입여부를 결정하거나, 국민경제적 필요에 의해 특정부분에 대해 외국인 소유를 제한하거나 중소기업이나 농민들에게 보조금 및 대부금을 지원하는 것도 금지된다. 특히 한일투자협정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의 수출 의무나 국내산 자재 사용의무, 기술 및 지식이전 의무, 연구개발 의무, 내국인 고용의무 등 강제적인 이행의무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정부가 그토록 선전하는 '기술 이전의 효과'와 '고용증대'의 효과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 결성
국민행동은 지난 8일 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한일투자협정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비상대책위는 앞으로 각종 선전전과 대중토론회 등을 통해 한일투자협정의 반민중성과 경제불안정성을 알려내고 한일투자협정 반대의 공감대를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달 22일 기본합의된 한일투자협정이 발효되기 위한 절차를 살펴보자면 우선 협정 문안의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 조정작업을 거친 후 양국이 각각 국무회의 심의 등 절차를 거쳐 양국 고위급이 공식 서명을 해야 한다. 그 후 국회동의 및 비준을 거쳐 양국이 국내절차를 완료했다는 외교공한을 교환하게 되면, 그로부터 30일째 되는 날 발효된다. 외교통상부는 우리와 일본의 국회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늦어도 내년중에는 협정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행동의 한 관계자는 "2005년 체결을 앞둔 북미자유무역협정, 전미자유무역협정에 대응해 대규모로 벌어지는 반대시위에 비해 한일투자협정의 문제를 우려하는 우리의 대응은 안이하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특히 한일투자협정 체결은 이후 한미투자협정 등 각종 협정들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행동의 다른 관계자는 "조직력을 갖고 있는 노동계에선 아직 한일투자협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현실투쟁에 대한 인식보다 낮다보니 적극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게 쉽지는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가 한일투자협정에 대해 핑크빛 희망만을 말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행동이 주장하는 문제들이 발생할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안고 있다면 협정 발효시기가 1년여 남은 상황에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한일투자협정의 국회비준을 앞두고 국민행동 등이 주장하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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