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경찰력을 투입할 듯했던 날들이었다. 당장이라도 파업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불법 엄단’할 기세였다. 그런데 “상처만 남긴 파업”이라고 비난하다니 나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타결해서 투쟁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을 포털뉴스에서 검색하다가 “상처만 남긴 대우조선 파업 … 임금 4.5% 더 받자고 8천100억대 손실”이라는 커다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여기에 “하청노조측 마지막에 ‘지도부 빼고 손배소 말라’ 요구, 협력사측 ‘수용불가’ 입장에 잠정합의안에서 빠져“라고 작은 제목을 덧붙여 놓고 있었다. 22일 저녁에 게재된 조선비즈 기사였다. 투쟁 요구에 공감하기라도 한 듯한 태도로 다만 투쟁의 방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표정을 한 기사였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투쟁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 제목부터가 “기분이 나쁘다”고 말해야겠다. 노동문제를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보도해 온 이 나라에서 대표적 보수언론의 경제지에 나는 어떤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관점을 뒤섞어 쓴 기사에 그만 기분이 잡치고 말았다. 임금 30% 인상에 원청사까지 포함한 일체 민형사책임 면책, 하청업체로의 고용승계를 넘어 원청 대우조선해양의 정규직으로 직접고용까지 쟁취해 내지 않아서 실망하기라도 한 표정으로 겨우 4.5% 임금인상을 쟁취하겠다고 8천100억원이나 손실을 끼쳤냐고 비난하다니. 그걸 비아냥이라고 읽고서 나는 순간 기분이 잡치고 말았다. 이런 비난은 진심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했을 때 할 수 있다고 믿기에 비아냥에 참을 수가 없었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4.5% 수준이 아닌 수십% 수준의 대폭적인 임금인상이 필요하고, 원청에 직접고용돼야 한다는 데에는 아무런 진심이 없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뉴스를 읽는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진심이 있었다면 감히 투쟁을 비난할 수 없었다. 이러한 진심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 헤아려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원청에 타격을 주는 강력한 투쟁 없이 이뤄 낼 수 없는 요구라고, 그러니 당연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상처만 남긴 투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알았을 것이다.

이처럼 태도에 기분 나빠 끄적거렸지만, 기사 내용 자체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원청 대우조선해양은 8천100억원대의 손실을 초래하면서까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얼마든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를 두고서 협상에 나서 임금·고용 등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대우조선해양 사업장에서 주인은 원청 대우조선해양이다. 이 나라 원청 사업장에서 원청과 사내하청업체, 그리고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면 주인의 지위는 원청이 차지하고 있다. 원청사용자가 원청노동자를 포함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등 처우를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우조선해양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데도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협상에 나서지 않고 방관했다면 무엇인가. 스스로 8천100억원대의 손실을 감수한 것이라고 평가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파업투쟁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원청 대우조선해양의 방관을 비난해야 마땅했다. 기사는 반대였다. 그런데 기분 나쁜 기사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2. “권성동,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향해 ‘민주노총 극단적 투쟁 고립 자초’”라는 커다란 제목에 “불법 행위는 단호한 처벌로 귀결될 것”이라는 작은 제목을 덧붙여서 이 언론사는 24일 기사를 게재하고 있었다. 이번 파업투쟁의 마무리에 ‘윤핵관’이라고 불리는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까지도 기고만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동자의 파업투쟁을 민주노총 차원의 거대한 투쟁이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고 비난하고 있으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번 파업투쟁을 비난하면서 권선동 대행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가 노사 간 협상 타결로 마무리된 것에 대해서는 “대우조선 파업이 51일 만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급한 불은 껐다” “법과 원칙을 향한 윤석열 정부의 단호한 태도가 민주노총의 극한투쟁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노사분규를 해결한 중요한 선례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과 같은 권선동의 말에 따르면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전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위와 같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했다. 민주노총은 총연합단체로서 어디까지나 지지와 연대를 했을 뿐인데, 권선동은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집권여당 대표의 머리에는 민주노총은 불법투쟁을 일삼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불법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협력업체들과의 교섭을 타결토록 했다고 강조하면서 법과 원칙을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법과 원칙은 무엇인가.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통해서 보면, 노동자 파업투쟁에 대한 단호한 경찰력 행사를 말한다. 경찰병력 등 공권력 행사를 통해서 노동자투쟁을 진압하겠다는 것이고, 이번에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파업에서 그 효과를 봤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이 나라 노동자를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불법파업투쟁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적극적인 경찰력 행사로 진압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번 대우조선해양이 중요한 선례가 된다고 했으니 이제 노동자 파업투쟁에 대해 불법이라면서 경찰력을 통해 진압하려 들 게 분명하다.

사실 이러한 권 대행에 앞서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투쟁에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면서 더는 기다려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말은 경찰력 투입을 통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제진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날부터 이 나라 노동자투쟁은 다시 경찰력의 위협 아래서 숨이 막히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사내하청 노동자들만, 그들의 투쟁만이 그런 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틈만 나면 법과 원칙을 내세워 불법을 엄단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해 왔는데, 특별히 노동문제에서 강조해 왔으니 노동자의 파업이 정당하지 않아서 불법으로 내몰리게 되면 노동자들은 사용자 자본 외에 국가권력을 상대해야 할 상황이다.

3. 이상과 같이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투쟁은 이 나라의 보수언론과 자본,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결코 노동자에 우호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대하고 있다고 보일 지경이다. 특히 그들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불법 엄단을 말하는 걸 듣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경찰력을 투입해 노동자투쟁을 강제진압할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경찰력 행사를 통한 노동자투쟁 강제진압은 그 노동자들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은 상처만 남긴 경찰력 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 경찰력 행사를 통해서 파업투쟁은 진압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파업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처지와 요구는 진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은 경찰력 행사를 통해 노동자투쟁을 진압할지라도 그것으로 노동자의 내일까지 진압할 수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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