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 방향을 논의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8일 첫 회의를 열었다. 연구회 운영 목적과 구성에 대한 논란이 이는 데다가 노동시간·임금체계 유연화로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연구회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출범을 두고 양대 노총은 “답정너” 연구회니 “들러리”라고 평가했다. 고용노동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 발표로 이미 정해진 의제에 정해진 답의 테두리 안에서 주문 생산하는 형식적 정당화 장치라는 비판이다. 구성원의 편향성 문제지만, 전문가가 갖는 중립적 전문성이라는 외양을 동원하는 방식도 민주적이지 않다. 이해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해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정부가 하고 있으니, 장내 대화는 물 건너간 듯하다. 노동계의 손목을 비틀어 합의를 유도하거나, 사용자측에 실리를 안겨 주는 방식으로 사회적 대화를 끌고 가는 것 말고 선택한 방법치곤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왜 그랬을까? 기존의 구도가 만족스럽지 않은 차에 더불어민주당 계열에서 채택한 사회적 합의 또는 대화의 방식을 형식적으로 계승한,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와도 다른 선택지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다 매년 지지고 볶는다고 여기는 최저임금위원회 운영방식 개편 방안 중 전문가 위상 강화라는 선택지를 아이디어로 발전시킨 것일 게다. 역사는 이미 떠도는 얘기를 창의적으로 적용해 발견하는 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발견의 운명은 승자의 역사로 기억되기보다, 더 큰 대가를 초래하거나 금방 사라져 잊어버리고 싶은 실패의 역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대체로 더 크다.

나의 의지대로 답을 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의제로 삼을까 하는 점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의제 설정은 재계의 요구이자 노동시장 유연화의 남은 과제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 약자에 대한 포용성을 부분적으로 장착하거나 말거나 하는 수준일 것이다. 핵심의제인 임금체계 개편을 보자. 고임금 노동에 차등 성과급을, 불안정 노동에는 저임금 고착화 효과만 큰 방식의 직무·성과급을 적용해 기업 인건비를 절감하는 결과만 가져온다면, 그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또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라는 상식을 적용하는데도 각종 노동시간 유연화 조처를 한껏 확대했는데, 이제 월단위 노동시간제나 추가적 유연화 확대 방안을 찾는다면 과거로의 퇴행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는 해괴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런 사태는 근원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시야가 너무 좁고, 또 방향성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자 영역으로 정립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구시대적이고 권위적이며 친기업 시장 유연화를 극단으로 강조하는 권위주의형 신자유주의 유형일 것이라는 예상은 맞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성과 불평등 양극화를 치유하는 따뜻한 개혁보수의 모습도 보일 것인지가 미지수로 남아 있었다.

포장을 무엇으로 하든 친기업 정책이자 독일 노동시장 양극화를 확대한 슈뢰더의 하르츠개혁을 모델로 하라는 보수언론의 요구가 많다. 박근혜 정부가 따라 하려다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그 대극에 있는 것이 2015년에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해 양극화에 대처하는 개혁보수의 모습을 보였던 독일의 메르켈 보수정부다. 일부 언론은 메르켈 정부도 하르츠 개혁을 지지한 것까지만 말하는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친기업·비노동 또는 반노동의 기치에서 찾는 경향이지만, 코로나19 이후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는 불평등과 노동빈곤에 손 놓을 수 없는 시점이다. 그 와중에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악화해 기업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정부 정체성으로 퇴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만을 강조할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인데, 그냥 별 고민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경제활성화만 목표인 친기업 경제부처가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정책을 전개할 틈바구니를 전문가 위원회에서 찾으면 미래 가치 논의 기반은 취약해진다.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얻는 기업의 인건비 절감은 사회 양극화와 대중 빈곤이라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만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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