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일터에서의 변화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긍정적인 부분도, 부정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긍정적이라면 그동안 소홀했던 사업장 안전관리에 대해 노동조합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자 한다든지, 작업자도 모르는 사이에 형식적으로 실시하거나 사측의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실시했던 위험성평가를 노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게 됐다는지 하는 것 등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 수립과 실질적인 작동, 그 과정에서 안전보건 문제의 당사자인 일하는 사람의 의견 청취를 통해 유해·위험을 낮추기 위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갑다. 반면에 정반대의 이야기도 들린다. 안전관리라는 명목하에 작업자들에 대한 통제가 촘촘해지거나, 작업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절차들이 도입돼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실제 안전과는 상관없는 절차와 통제가 부작용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재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설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되기 이전부터 건설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들이 바디캠을 통해 노동자들의 휴식이나 일상까지 통제하는 문제가 종종 불거져왔다. 위험요소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사전에 예방적 조치를 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일상을 통제하려는 행위는 그 자체로 문제다. 스마트 안전관리라는 명목으로 도입되는 첨단 장비가 화재·가스 누출 등에 대해 예방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노동자의 일상을 통제·감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의 목적과 달리 사용되는 바디캠 같은 것을 이용한 감시통제는 노동자들의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 즉각 조치가 필요하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이미 사라진 채용 전 건강검진이 기이한 형태로 일부 건설현장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출근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혈압을 체크해 혈압이 150을 넘으면 “일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사라진 제도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슬그머니 실체를 드러내 횡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에 폐지된 채용시 건강검진은 본래 노동자를 채용한 후에 해당 업무에 적합 여부를 판단해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운영됐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는 달리 건강진단이라는 명목하에 질병이 있는 채용 차별과 고용기회 박탈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돼 사라진 제도임을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부 건설현장에서는 이런 행태가 폐지된 ‘채용 전 건강검진’이라고 문제제기하자, 익히 알고 있다는 듯 ‘배치 전 건강검진’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배치 전 건강검진은 검진기관에서 실시하는 것이지, 현장에서 임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행태는 자동혈압계를 사용해 혈압이 150을 넘는 노동자들에게 임의로 노동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럽고혈압학회에서는 개정한 ‘2021년 혈압측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자동혈압기계를 사용할 경우 △보정되고 신뢰할 만한 기계 사용 △적절한 크기의 커프 사용을 강조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자동혈압계가 대한고혈압학회나 유럽고혈압학회에서 보증하는 혈압계인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정 기간마다 보정이 되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혈압측정시 윗팔을 감싸는 커프의 사이즈가 팔둘레와 차이가 나면 혈압측정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혈압을 측정하려면 △편안한 기온의 조용한 공간 △ 30분 이내 흡연·카페인·음식·운동 금지 △ 측정 전 앉아서 3~5분 휴식 △ 측정시 말하지 않기 등의 규칙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런 규칙이 얼마나 제대로 준수되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행태들이 보건관리자의 입회도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고 있다. 설령 의사 또는 간호사인 보건관리자가 입회해 있다고 할지라도 보건관리자는 건강진단 결과 발견된 질병자의 요양 지도·관리를 할 수 있을 뿐이다.(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별표 6) 측정 결과를 근거로 업무를 못하도록 막을 권한도 없다.

건설노동처럼 전신을 움직여야 하는 업무는 오히려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제기도 있다. 따라서 건설노동자들의 뇌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건설노동자를 통제하고, 압박하는 부실한 혈압 측정이 아니라 일상적인 보건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고위험군의 노동자가 있다면 적극적인 보호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나 지금처럼 폭염이 극심한 때 건강 이상을 느끼면 즉각적으로 보고해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이에 더해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