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와 본지는 지난 3월28일부터 6월10일까지 ‘서울지역 노동자 기후정의 콘텐츠 공모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수기·사진·웹홍보물 분야에서 각 한 편씩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이 중 수기와 사진 부문 수상작을 지면을 빌어 공개한다.<편집자주>
 

▲ 김주태(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
▲ 김주태(서울교통공사)

서울 시내에서 산을 명확히 볼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은 어쩌면 계절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내가 일하는 서울교통공사 군자차량사업소에선 곧바로 북한산이 보인다. 산을 마주하는 일이 근무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산을 볼 때 그날의 내 감정이 구상화되는 것 같다. 매일같이 노동에 지치고, 삶에 치이다가 답답해 바람을 쐴 때 산이 잘 보이지 않는 날엔 내 숨도 답답하다. 반면 산이 훤히 보이는 날엔 속이 뻥 하고 뚫리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 알고 보니 이건 기분이 아니라 그날의 기후에 따른 현실이었다. 산의 채도는 그날의 기후를 나타냈다. 그리고 그건 곧바로 나의 건강과 기분으로 스며들었다.

친환경 교통 지하철 차량사업소
지역사회 혐오시설로 ‘추락’

우리 사업소에도 북한산과 같은 거대한 산이 존재한다. 바로 산업용 쓰레기로 이뤄진 산더미다. 북한산을 등지고 과감하게 솟아 있는 쓰레기산은 저 멀리 푸르게 보이는 북한산과 대조된다. 마치 선과 악이 공존하는 풍경처럼, 혹은 여름에 스위스 산에 쌓인 눈산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막기 위해 높은 담벼락을 쌓았지만 너무나도 거대해서 한참을 위로 솟아 보였다. 마치 막을 수도 가릴 수도 없는 필연적인 존재처럼. 쌓여 있는 더미 속을 들여다보니 수많은 마대자루에 일반쓰레기부터 캔과 병, 심지어 화학약품 통까지 같이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시민들의 교통안전을 책임지고, 서울시의 녹색환경을 위한 친환경 전기동차를 운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지역주민들이 혐오하는 시설이 돼 버렸다. 지하철의 소음과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산업용 폐기물의 악취 등으로 존재 목적과는 다르게 변질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처음 입사했을 때, 서울시민들의 안전과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이동 수단으로서 서울시민의 교통을 책임지는 이곳의 구성원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사명감이 남달랐다. 그러나 점차 희미해지는 북한산과 그에 반해 사업소 안에서 점차 높아져 가고 거대해지는 쓰레기 산더미 사이를 볼 때,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혐오하는 눈초리를 볼 때마다 이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로서의 사명감은 북한산처럼 점차 희미해져 갔다.

기후위기에 노출된 노동환경
‘기후정의=노동권’ 인지 못해

그보다 더 빠르게 피부로 와닿는 문제는 바로 노동환경이었다. 차량사업소에서 근무하는 우리 구성원은 직업 특성상 대부분이 실외에서 작업한다. 이 때문에 여름엔 더위에, 겨울엔 추위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환경에 처한 사람은 한해 한해 달라지는 기후변화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7년 전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지금의 노동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 설비들이 발전하고 시스템은 효율화됐지만 봄과 가을이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여름과 겨울이 차지하면서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진 셈이다. 이제는 포도당 알약 없이는 여름에 일하기가 두려울 정도가 돼 버렸다. 그나마 지붕이 있는 차량사업소 공장에서 근무하는 우리 직종이야 괜찮지만, 레일을 설치하는 토목 직종은 여름에 업무를 할 수 없는 여건이 돼 버렸다. 기후변화는 노동자로서 나의 사명감뿐만 아니라 점차 노동환경 자체를 위협하고 있었다.

전국의 지하철이나 철도 노조들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노동환경을 위해 투쟁해 왔다. 업무 효율성보단 노동 형평성을 중시했고, 생산성보단 보전성을 앞세웠다. 그 노력의 결실은 근무시간·근로조건·임금·복지 등 여러 부분의 달라진 노동권으로 증명됐다. 지난 세월과 비교하면 노동환경은 엄청난 개혁을 이뤄 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딱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기후’다. 지난 세월 동안 기후정의가 임금·복지 향상과 같은 노동자의 권리라고는 인지하지 못하고 싸워 왔다. 그 결과 임금·복지 등의 모든 노동 여건이 좋아졌지만, 기후는 반대로 퇴보해 위기를 맞이했다. 높아진 기온과, 길어진 여름과 겨울, 그리고 짙어지는 미세먼지까지. 이 모든 게 피부로 느껴진 지금에서야 우리는 기후가 노동권의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라는 걸 깨달았다. 기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인 인권과 노동자로서의 권리인 노동권의 교집합을 이루는 정말 중요한 요소다.

노조를 통한 기후위기 극복 ‘또 하나의 혁명’

뒤늦게 깨달았지만, 다행히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지금껏 노조가 나아가는 방향성과 결이 같았다. 효율성보단 형평성을, 생산성보단 보전성을, 개발보다는 보존을 위한 노력이 요구됐다. 무분별한 생산과 개발에 따른 에너지 낭비와 폐기물 증가를 절감하기 위해 재사용과 절약, 혁신 기술개발을 실천했다. 우리 사업소 내에서도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재사용이 가능한 자재들은 최대한 재활용하고, 설비들의 에너지를 효율화할 수 있는 시스템들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혁신 기술들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그것은 쓰레기 산더미의 작아진 규모만으로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사업소 노동자들의 노력만으로 북한산이 뚜렷하게 보이거나 봄·가을이 늘어났거나의 큰 변화는 없지만, 적어도 내 눈 앞에 펼쳐진 쓰레기 산더미의 모습은 확실하게 변했다.

많은 국가들이 SDGs(지속가능개발목표)에 따라 기후변화에 맞서고 있으며, 동시에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따라 각 산업별로 지속 가능한 경영방침을 세우고 이를 위한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 민관이 발맞춰 가고, 노사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목표가 뚜렷해진 이 시점에서, 우리 노동자들도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보다 스마트하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노동자들 또한 기후정의를 위한 어떠한 방침이나 구체적인 목표가 노조를 통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노력은 반드시 모든 산업의 노동환경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렇게 실현된 기후위기 극복은 노동환경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삶의 터전 그 자체를 지키는 혁명이 될 것이다.
 

기후정의 실천은 이들처럼
▲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조합원 권순부씨의 작품이다. 희망연대본부가 지난 4월 개최한 ‘따릉이 대행진’ 행사 장면을 담았다. 조합원들은 서울 광화문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발해 SK남산그린빌딩, LG유플러스 용사사옥을 자전거 행진하면서 노사공동 ‘기후정의위원회’ 설치를 통한 탄소배출 감축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조합원 권순부씨의 작품이다. 희망연대본부가 지난 4월 개최한 ‘따릉이 대행진’ 행사 장면을 담았다. 조합원들은 서울 광화문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발해 SK남산그린빌딩, LG유플러스 용사사옥을 자전거 행진하면서 노사공동 ‘기후정의위원회’ 설치를 통한 탄소배출 감축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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