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소작업차 기사 김소룡씨가 지난 20일 인천의 한 현장에서 고소작업대를 올리기 위해 리모컨을 조작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올해 1월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하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은 법률 공포 후 3년 뒤에나 시행하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뿐 아니다. 언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여전히 안전보건법령 테두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와 현장을 <매일노동뉴스>가 찾았다. 안전보건공단과 함께하는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캠페인의 일환으로 공동기획했다.<편집자주>

“현장 작업반장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일할 수밖에 없어요. 초보기사들은 위험한 현장에서도 ‘안 된다’고 거부하지 못하고 일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인근 도로에서 만난 고소작업차 운전 노동자 정범준(52)씨가 말했다.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건축장비지회에서 조직차장을 맡고 있는 정씨는 이날 양광식(57) 지회장, 고소작업차 운전자 김소룡(31)씨와 함께 고소작업차 작업 과정을 기자에게 시연했다.

무거운 작업대 들어 올리는 고소작업차
“전도 위험 높은데도 작업 거부 못해”

이른바 ‘스카이’라 불리는 고소작업차는 화물차에 고소작업용 작업대를 탑재한 장비다. 고소작업차의 경우 지반이 불안정한 곳에서 작업하다가 전도되는 사고가 주로 발생한다. 건설현장에서는 과적 작업을 강요당하다가 전복되기도 한다.

정씨는 “평탄한 지반 위에서 아웃트리거(지지대)로 무게를 분산시킨 뒤 작업해야 한다”며 “지반 상태가 안 좋은데 물건을 많이 실은 작업대를 높이 들어 올리면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소룡씨는 “작업 장소에 경사가 있거나 현장 사정에 따라 아웃트리거를 길게 뽑지 못하면 고소작업차가 넘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빨리빨리 문화’가 안전사고를 초래하기도 한다. 20여년간 스카이차를 운전한 양광식 지회장은 “현장에서 ‘갑’이 일을 재촉하면 여유를 가지고 작업할 수가 없다”며 “그렇게 일하다 보면 어느새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소작업차는 건물 외벽·유리 공사, 간판 설치·보수 같은 고소작업을 하는 장비다. 주로 건설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노동자가 작업대에 올라가 유리나 패널을 붙이거나 건물을 수리하는 작업을 한다. 대개 공사의 마지막 공정에 투입된다.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2020년 1월 시행하면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건설기계 직접 운전자가 포함됐다. 건설기계 운전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에게 산재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할 의무가 부여됐다. 건설기계는 그 기계의 주된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하고, 크레인 같은 양중기는 적재하중 내에서 사용하도록 제한했다. 건설기계가 넘어지거나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유도자 배치, 지반 부동침하 방지, 갓길 붕괴 방지, 도로폭 유지 같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낙하 사고에 무방비 카고 크레인 기사,
안전모도 없이 현장 투입되는 살수차 운전자

하지만 고소작업차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고소작업차는 건설기계가 아니라 화물차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카고 크레인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카고 크레인은 화물 적재함에 화물 적재·하역·운송이 가능한 소형 크레인을 설치한 차량으로 건축·토목공사에 활용된다.

곽칠용(64) 건설노조 광주전남건설기계지부 광주크레인지회장은 2018년 벌목작업 현장에서 크레인에서 떨어진 나무에 맞아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곽 지회장은 “카고 크레인은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기 때문에 붐대가 부서지거나 와이어로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무거운 물건을 들다 보면 지반이 꺼져 사고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 지반을 다지거나 비산먼지를 제거하는 살수차 운전노동자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살수차는 차량용 건설기계처럼 전도·미끄러짐·추락 같은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철거 현장에서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물을 뿌리는 작업은 특히 위험하다. 이용(54) 건설노조 광주전남건설기계지부 살수차지회장은 “소방차처럼 멀리서 물을 뿌리는 게 아니라 가까이 붙어 작업을 해야 하는데 언제 붕괴가 일어날지 몰라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현장에서는 안전모나 안전화를 지급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안전장비를 달라고 요구해도 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건설현장에서는 2009년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자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2018년 12월 산재보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른 건설기계를 직접 운전하는 사람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이에 건설기계 27개 차종 운전자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건설기계로 등록되지 않은 고소작업차·카고 크레인·살수차 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재보험의 테두리 바깥에 놓여 있다. 지난해 3월 강원도 삼척에서 살수차가 전도하면서 작업자가 논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지급을 결정했다.

▲ 폭이 좁은 도로에 정박해 작업을 하는 일이 잦다. 지나는 차량이 많아 주변을 잘 살펴야 했다. <정기훈 기자>
▲ 폭이 좁은 도로에 정박해 작업을 하는 일이 잦다. 지나는 차량이 많아 주변을 잘 살펴야 했다.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71%인데
“산재보험 혜택이라도 받게 해야”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에게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한다. 3자에게 도급·용역·위탁 등을 한 경우에도 그 종사자의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처벌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외에 도급·용역·위탁 등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도 종사자에 포함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물론이고, 직종과 무관하게 다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하거나 타인을 사용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이기만 하면 종사자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아니지만 건설기계 임대차 계약을 맺고 현장에 투입되는 고소작업차·카고 크레인·살수차 운전노동자도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업에 대해 법 적용을 공포 뒤 3년간 유예한 점이다. 노동부의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전체 사고사망자 417명 중 298명(71.5%)이 50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 숨졌다. 구체적으로 2천만원 미만 현장 68명(16.3%), 2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 현장 62명(14.9%), 1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현장에서 168명(40.3%)이 사망했다.

2024년 1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된 상황에서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 이후에도 '공사금액 쪼개기'를 통해 법을 무력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고소작업차·카고 크레인·살수차 운전자들이 위험한 건설현장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며 “적어도 산재보험법만큼은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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