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민라이더 김정훈씨가 한 저가커피 브랜드 매장에서 휴식을 취한 뒤 배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쉬다’는 말은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둔다는 의미도 있지만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호흡과 같은 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일터에서 쉴 권리는 어떠한가. 20명 미만 작은사업장 노동자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쉴 공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노동뉴스>가 쉴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동노동자의 ‘쉼터’를 들여다봤다.<특별취재팀 : 김미영·강예슬·정소희 기자>

지난 23일 서울에 올해 첫 장맛비가 쏟아졌다. 가문 땅에 내리는 비가 반갑지만 그칠 줄 모르고 들이붓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온몸이 젖었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5년차 라이더 김정훈(40)씨는 흠뻑 젖은 몸을 말리려 이날 오후 시흥IC 인근 카페에 앉아 있었다. 출근 전 커피 한잔으로 몸을 깨우기 위해서다. 타고 나온 흰색 125시시 이륜차는 카페 앞 대로변에 잠시 세워 뒀다.

김씨는 이달 초부터 밤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동네 배달대행사 ‘배달의전설’에서 배달일을 하고 있다. 한 달 전까지는 새벽 5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대행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고, 오후 4시부터 오후 9시까지 배달의민족·쿠팡·요기요로 일을 했다. 이달부터는 교통사고로 골절상을 입은 동료를 대신해 두 달 동안 야간에 일을 한다. 야간에 하는 일이 익숙지 않아 몸은 고되지만 치료를 마칠 때까지 자리를 메워 주기로 약속했다.

이륜차를 끌고 쉴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테라스가 있는 동네 편의점 몇 군데, 주차에 문제가 없는 카페 몇 곳이 단골이다. 이날 그가 찾은 카페도 개중 하나다. “주로 집에서 쉬거나 (배달대행) 사무실·카페·편의점에 가고, 주변 라이더들은 24시간 패스트 푸드점에서도 잠깐 쉬어요.” 배달대행업체 사무실 한편에 놓인 소파에 몸을 잠시 기댈 때도 있다고 한다. “열악하지만 잠깐은 쉴 수 있으니까요.” 그의 설명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김씨는 잠깐의 휴게시간에는 구로구의 한 카페를 찾곤 했다. 배달노동자에게는 커피를 1천원에 팔아 시간을 보낼 공간을 찾는 라이더들 사이에서 소문 난 곳이다. 그런데 지난달 카페가 코로나19로 문을 닫아 더 이상 갈 수 없게 됐다.

쉼터가 절실한 라이더
폭우 쏟아져도 10시간 배달노동

2016년 서울 서초구를 시작으로 이동노동자쉼터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지만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태부족이다. 김씨가 주로 일하는 서울 남서부(동작·구로·관악·영등포)에는 강서구에만 쉼터가 있다. 그가 사는 금천구에서 가장 가까운 이동노동자 쉼터는 경기도 광명시에 하나 있다. 김씨는 “시설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가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차로 30분을 가야 해서다.

흔히 점심(오전 11시~오후 1시)·저녁(오후 5시~오후 8시) 피크타임 시간에는 단가가 높아 라이더들이 쉬지 않는다. 이때는 틈이 생겨도 길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이 시간대를 제외한 시간을 비(非)피크타임이라고 한다. ‘시간을 녹이는’ 라이더도 있지만 김씨는 비피크타임에는 단가가 너무 낮아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을 녹인다’는 말은 비피크시간대에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라이더들의 은어다. 김씨는 비피크타임에 주로 집에서 쉰다. 일하는 곳에서 집이 가까워 가능한 일이다.

시간당 최고 120밀리미터의 폭우가 내렸지만 이날도 김씨는 동료와 한 약속을 지켰다. 23일 밤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10시간을 꼬박 일했다. 밤새 그가 배달한 건수는 57건, 구글 지도 타임라인을 이용해 확인한 이동거리는 총 140킬로미터다. 이날처럼 폭우가 내리면 배달시간이 길어진다.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쉴 시간은 더 줄어든다. 이날도 새벽 5시가 돼서야 한 시간 정도 집에서 쉴 수 있었다.

금천구에 쉼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쉼터가 있다면요? 당연히 쉬죠. 차를 댈 공간이 있고, 위치가 좋다면 더 좋고요. 라이더든, 대리기사든 항상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요. 구마다 쉼터가 생기면 정말 좋겠지만 지자체에서 관심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쉼터로 출근하는 대리운전노동자들
좋은 콜 잡기 위한 기다림의 공간

서울시내 5개 노동자쉼터를 운영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간혹 번역가·작가 등 프리랜서나 배달노동자가 찾기도 하지만 이동노동자쉼터 이용객의 대부분은 대리운전 노동자다. 대기시간이 긴 일의 특성 때문이다. 이들에게 이동노동자쉼터는 일터이자 사랑방 같은 존재다. 좋은 콜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대리운전 노동자에게 쉼터는 다음 일을 찾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정거장이다.

지난 21일 찾은 서울 서초구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에는 개소시간인 오후 6시부터 ‘출석체크’를 마친 대리운전 노동자 5명이 앉아 있었다. 쉼터에는 하루 평균 50~60명이 찾는다고 한다. 서초쉼터에는 안마의자 한 대와 여러 개의 소파가 놓여 있다. 여성휴게실이 따로 구분돼 있고, 물과 커피·차를 마실 수 있도록 정수기가 있다. 큰 테이블에는 자리마다 휴대전화 충전기가 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방문객도 대리운전 노동자다. 콜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휴대전화를 켜 두기 때문에 쉼터에 앉아 있는 이들 모두가 충전기에 휴대전화를 꽂은 채 화면을 주시했다.

매일 쉼터에 출석한다는 50대 대리운전기사 안경연(가명)씨는 20년차 베테랑 기사로 2016년 서초쉼터가 개소할 때부터 이곳을 찾았다. 일이 많이 몰리는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신논현역 근처에서 대기할 곳을 찾다가 쉼터를 알게 됐다. 신논현역 주변에 거주하는 안씨에게는 서초쉼터는 출근지나 마찬가지다.

휴대전화에 눈을 고정하고 안씨는 분당·수원 방향의 콜을 기다렸다. 하루 몇 콜을 ‘타고’ 새벽 두세 시가 돼 집에 돌아올 때쯤 쉼터에 한 번 더 들른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지는 않다. “여기에 들어오면 쉬고 싶어지니까요. 계속 콜을 잡아야 하는데 (쉼터에 오면) 선호하는 콜이 아니면 잘 안 움직이게 되죠. 그래서 일부러 밖에 나가요. 한 건이라도 더 해야죠.” 매번 원하는 콜을 받을 수는 없는 일, 낯선 곳에서 일을 마치면 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경비원이 없는 상가나 은행 ATM, 지하철역에서 대기하기도 한다. 낯선 곳이어도 지도를 보며 상업지구를 찾아 일을 잡으며 끊임없이 이동한다.

오후 8시가 되자 바쁘게 울리는 콜 소리로 쉼터가 시끄러워졌다. “형! 어제 같은 콜 줄 거예요?” 40대 대리운전기사 박영진(가명)씨가 쉼터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한마디 했다. 쉼터 안에 있던 중년의 대리기사들을 ‘형’이라 부르는 그는 며칠 전 ‘형’한테 양보받은 콜이 집에서 먼 경기도 외곽 골프장까지 가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꽤나 고생을 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투잡’을 뛰는 대리기사다. 근처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매일 이곳에 들른다. 퇴근길에 집 근처로 가는 차를 잡으려 박씨는 부천·인천으로 향하는 콜만 받는다고 했다. 1년 정도 대리기사 일을 했는데, 쉼터는 친구 소개로 알게 됐다. “월 60만원에서 80만원은 벌어요. 집에 가서 TV 보느니 알바다 생각하고 하는 거죠. 애들이 대학생이라 돈이 많이 들거든요.”

▲ 한 대리운전 기사가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콜을 기다리고 있다. <정기훈 기자>
▲ 한 대리운전 기사가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콜을 기다리고 있다. <정기훈 기자>

길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노동자들

밤 9시가 가까워지자 일을 시작하는 이들이 하나 둘 쉼터를 나선다. 쉼터 한편에 앉아 있던 젊은 남성이 고객의 전화를 받으며 바삐 나간다. 쉼터에서 도보 3분 거리에는 신분당선과 9호선이 지나는 신논현역이 있다. 대로변에 있는 삼겹살집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가게 옆 편의점 앞 테이블에 쉼터에 있던 대리운전기사 두 명이 캔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귀가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신논현역 주변은 늦은 시간까지 불야성이다. 저녁 9시가 넘어선 시간에 1번 출구 앞 건물 돌계단에는 60대 대리기사 이만호(가명)씨가 휴대전화를 응시하며 콜을 기다리고 있다. ‘왜 쉼터에서 콜을 기다리지 않느냐’고 물으니 “콜도 경쟁이라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가 기사 위치에 따라 콜을 배정해 주는데 좋은 콜을 봐도 젊은 기사들에 비해 반응 속도가 늦어 번번이 놓쳤다는 것이다. 쉼터에서 마냥 쉬고 있을 수가 없고 다른 기사들과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쉼터 밖에서 콜을 잡는다고 했다. 30년간 택시를 몰다가 2년 전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한 그는 이제 막 일이 손에 익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씨는 대리운전노조 조합원이다. 쉼터에는 들어가지 않는 그도 “쉼터는 꼭 필요한 곳”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경기도 수원·성남·부천·일산 쉼터 등 여러 쉼터를 방문했다는 그는 노조에서 하는 쉼터 증설 서명운동에도 참여했다. “기사들이 힘이 너무 없으니까요. 힘이 돼 주려고 노조도 하고 서명운동도 해요.”

그는 “주말에도 문을 여는 이동노동자쉼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을 하는데 일요일에는 버스가 일찍 끊겨 집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신차를 배달하는 일을 잡아서 두둑한 일당을 기대한다”는 그의 말이 끝날 때 즈음 휴대전화에서 콜 소리가 울렸다.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던 그가 휴대전화로 눈을 돌리며 손을 움직이더니 “오늘은 그만해야겠다”며 한숨을 내쉬고는 바삐 자리를 떴다. 그는 일을 마치고 또 어떤 거리에서 서성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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