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섭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1. 사건의 개요

(1) A연구원 사업장은 노사합의로 신인사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는데, 신인사제도는 승진·승급방식을 변경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며 명예퇴직제를 시행한다는 것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2009년 1월부터 정년 61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가 도입됐다.

(2)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내용은 직원들이 만 55세 이상이 되면 그 이전까지의 직급과 역량등급과 무관하게 2009년부터는 선임 14 역량등급, 2013년부터는 책임 2 역량등급을 적용해 기준연급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평가등급에 따라 월급여가 S등급일 때는 약 93만원, D등급일 때에는 약 283만원이 감소했다. 반면 업무내용이 변경되거나 목표수준이나 실적달성률 등 업무량이 감소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었다.

(3) 원고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지 않은 경우에 원고가 받을 수 있었던 임금 등과 이미 지급받은 임금 등의 차액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2심 모두 원고가 승소하여 피고(A연구원)가 상고를 제기헸다.

2. 판결의 요지

(1)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은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동 조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에 위반되는 이 사건 취업규칙은 효력이 없다.

(2)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 그 조치가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3) 이 사건 성과연급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이러한 목적을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려운 점, 이 사건 성과연급제로 인해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고, 업무감축 등 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은 점, 이 사건 성과연급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

3. 대상판결의 의의

(1) 대상판결은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가 강행규정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노사합의, 즉 단체협약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단체협약이 강행규정인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하면 효력이 없고, 취업규칙·개별 근로계약 역시 마찬가지다.

(2) 무엇보다 대상판결은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사건은 정년유지형 사례였지만, 대상판결이 밝힌 판단기준들은 정년연장형인 경우에도 그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먼저 위 조항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 먼저 임금피크제는 연령에 따라 임금 등에서 차별을 하는 제도에 해당함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연령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사용자가 입증해야 할 것이다. 대상판결에 따르면 연령에 따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돼야 한다. 가령 특정 연령 이상인 경우에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업무 중 일부(예를 들어 위험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동자 개인의 사유가 아닌 사용자의 사정(경영상 필요성, 신규채용 목적 등)을 들어 특정 연령의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대상판결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이라는 요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서 임금피크제는 인건비 부담 완화, 실적 달성률 상향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오히려 55세 이상 직원들의 실적 달성률이 더 높다는 점에서,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삼은 데에는 목적의 정당성이 없다고 재판부는 봤다. 임금피크제는 2016년부터 고령자고용법의 60세 이상 정년법제화가 시행되면서 2015년을 전후해 당시 정부의 정책, 압박이 가해진 결과 여러 사업장에 다수 도입됐다. 하급심 판결들을 보면 이때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고령자고용법 19조의2 1항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조치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후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도입 당시 어떤 목적을 내세웠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퇴출 목적으로 임금피크제가 이용됐다면 목적의 타당성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대상판결은 감액된 재원이 도입 본래의 목적에 사용됐는지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도입 목적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중요 표지로 보인다.

임금피크제의 도입목적의 필요성이나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되기 어렵다. 임금피크제 사안에서는 대상 노동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와 임금삭감에 대한 대상조치 도입 여부라고 설시돼 있는 부분이다. 이 점에서는 대상판결이 제시하는 도입 목적의 타당성, 불이익의 정도, 대상조치의 도입은 단순한 판단 요소라기보다는 유효요건으로 이해된다. 불이익의 정도는 기본급 삭감 외에도 연동되는 성과급, 그 외 인사상의 불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다. 늘어나는 정년에 비해 전체 삭감률이 크다면, 불이익이 과도해서 무효가 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정년이 2년이 늘어났는데, 임금피크제는 앞으로 당겨서 5년간 적용하고 감액한 임금이 기존 급여의 2년치에 해당한다면, 늘어난 2년은 무상노동을 하는 셈이 되는데 이것이 정당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이익이 적정한 범위 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대상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년연장형인 경우에 정년연장이라는 대상조치가 있기 때문에 유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불이익을 받는 개별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2016년부터는 법률에 의해 정년이 60세가 보장돼 있는 상황에서 그 즈음에 노사합의 등으로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것이 대상조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업장이 정년연장형이 맞느냐고 묻는 질의가 많은데, 현재 하급심 판결들을 보면 정년연장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후 업무의 변화가 없다면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대상조치의 사례로 근로시간단축, 종전 업무와 다른 지원부서로 이동, 장기휴가 부여 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상조치(보상조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를 대상조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해에 삭감률이 50%이고 6개월간의 전직준비휴가를 부여하면서 사용자는 사실상 근무기간 임금을 100% 지급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해당 노동자가 보기에는 6개월의 강제 무급휴직일 뿐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근로시간단축(예를 들어 주 4일 근무), 장기휴가 부여가 사용자의 사정에 의한 휴업조치 내지 강제 무급휴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그 방법의 적정성’이라는 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3) 55세 즈음에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는 사업장이 많다. 아주 옛날이라면 몰라도 55세라면 한창 사회에서 활동하는 나이다. 현장에서 본 임금피크제는 임금을 삭감하고 모욕을 줘서 퇴출을 위한 목적으로 기능하는 제도처럼 보인다. 노동의욕 저하, 부서 내 갈등 유발 등 사용자 입장에서도 더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대상판결이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 속에 도입됐던 임금피크제의 존폐를 논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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