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섭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

1972년 발간된 로벤스 보고서는 영국 산업안전보건관리 체계의 변화를 요구한다. 안전보건관리 법령·담당기관 ‘통합’과 규제방식의 ‘자율 확대’가 이 보고서의 근간이다. 즉 기존의 여러 안전보건 관련 법률들을 포함하면서 근로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인 법률 체계로 통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강행)규정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반적인 필요사항으로 한정하고 구체적인 조치는 매우 기술적이므로 새로운 지식에 맞춰 쉽게 변경할 수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장법·탄광법·폭발물법·농업법 등 산업별로 나뉜 규제를 산업보건안전법(HSWA 1974)으로 통합하고, 지시기반(prescriptive) 규제방식을 일반적인 목표를 정해 주고 구체적인 달성방법은 사업주가 선택하도록 하는 목표기반(goal-based) 규제방식으로 바꿨다. 산업안전보건법 2조는 고용주의 피고용인에 대한 일반적인 의무를 이렇게 정하고 있다. “모든 고용주는 ‘합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의 피고용인에 대한 작업장에서의 보건, 안전 및 복지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것이 이 법이 정하고 있는 고용주 의무의 거의 전부다.

우리 산업안전보건법령은 지시기반 규제의 전형이다. 법률로 사업주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행령과 시행규칙, 그리고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과 고시까지 깨알처럼 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사법처리 과정에서는 적용 규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또 기술진보가 너무 빨라 규제가 기술을 따라갈 수 없는 첨단기술시대에는 현장 적용성에서 더 많은 문제점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업주는 규제가 과하다거나 현장에 맞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과한 규제가 사업주로 하여금 안전보건에 대해서 외부기관에 의해 강요된 세부적인 규정에 대응하는 문제로 여기도록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로벤스 보고서의 지적을 눈여겨 봐야 한다. 규제가 지시적이고 강해지면 사업주는 이를 면하기 위한 방편을 찾는데 더 몰두하게 된다.

그런데 목표기반 규제는 ‘방임’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오히려 사업주·근로자 등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각자에게 부여된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먼저 목표기반 규제는 기존의 지시기반 규제와는 다른 사업주의 태도를 요구한다. 사업주가 작업자와 함께 유해·위험 요인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수단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시기반 규제는 법령의 규정 위반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면에, 목표기반 규제의 경우에는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적합한’ 조치를 취했는지를 따져 묻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규제방식은 근로자의 책임과 참여를 요구한다. 영국 산업보건안전법 7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본인이나 업무 활동에 의해 영향받는 주위 사람의 안전과 보건을 지키기 위해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이고, 고용주 및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 할 의무를 진다. 또 근로자는 목표기반 규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위험성평가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목표기반 규제는 감독관의 역량도 더 높은 수준으로 요구한다. 이 규제방식에서는 감독관이 점검 중인 현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유해·위험 확인과 통제수단의 ‘적절성’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안전난간대가 규정에 맞게 설치돼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업장의 광범위한 유해·위험 관리시스템이 적절한지 여부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영국 산업안전보건청 감독관은 채용 후 2년간의 교육을 받고 평가를 받은 후에 비로소 감독관의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주어진다.

목표기반 규제는 영국 같은 안전선진국에서 그 효과성이 입증되었다. 이는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이 “영국의 사고와 질병을 통합한 산재발생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 것은 ‘위험을 생산하는 자가 그 위험을 통제하는 최적의 위치에 있다’는 단순하고 변함없는 원칙을 적용하는 데 힘입었다”고 평가하며 “다른 많은 나라가 영국 모델을 자신들 관리체계의 토대로 삼아 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제 우리도 규제방식 변화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마침 지난해 9월 한 경영자단체가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정책 방향을 조사한 보고서를 토대로 목표기반 규제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어 고무적이다.

하지만 안전관리는 사회적 수준을 반영한다는 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 사회의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사업주·근로자 그리고 감독관의 역량과 태도를 평가하고 그 수준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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