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의 교섭 타결 소식이 들려왔다. 몇 시간 전까지도 교섭당사자가 아니라며 발뺌하던 정부의 대응은 어찌나 설익은 것이었는지 앞으로의 행보가 걱정스럽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차치하고, 우선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에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일반인들도 무서울 정도로 치솟는 기름값에 화물노동자들이 이번 파업에 임하는 심정이 얼마나 절박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안전운임제를 유지함으로써 생존권을 지켜 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 운임이라는 시장의 논리에 안전이라는 가치를 결합한 소중한 아이디어를 지켜냈다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사람들의 질병을 줄이고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방역조치를 하고 백신을 개발하는 등의 집중적인 접근법이 필요한 한편, 건강검진이나 의료보험제도 같은 안전망을 강화하는 지속적인 접근법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사후적인 조치가 아니라 애초에 질병에 걸리는 사람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술과 담배를 줄이고 운동을 하라고 백 번 생활습관 지도를 해 봐야 먹고사는 고단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안전운임제의 효과가 보여주는 것이 있다. 과적·과속을 단속하고 운행시간을 제한하는 것보다도 근본적인 처방은 화물운송사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함으로써 화물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있었다는 점이다. 연구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안전운임제를 적용받은 화물노동자들의 졸음 운전·과적·과속 경험은 10~20%포인트 정도의 의미 있는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컨테이너 차량의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은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물차의 교통사고율과 사망자수를 인용해 가며 안전운임제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화물차 360만대 중 안전운임제를 적용받는 화물차가 약 3만대에 불과한 점을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와 시민들의 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위해 시장의 질서에 ‘보이는 손’을 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고 더 많은 산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

당장은 화물운송산업 안에서도 적용대상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안전운임제를 확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지만, 화물운송의 상위 카테고리인 물류산업 전체로 확장시켜 볼 수 있다. 택배노동자들이나 배달라이더들도 화물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건당 운송료’에 발목 잡혀 과로와 과속에 내몰리는 것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구조 안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 적정한 운임과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해 보자. 비용의 문제가 안전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노동현장은 다름 아닌 건설현장일 것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부실공사와 공기단축이 건설현장 대형재해의 주범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건설공사에서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일정 기준 계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원도급사가 발주처와 계약할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로 하도급 계약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기준이 없다. 애시당초 비용을 쥐어짜기 위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안전관리비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대형화재나 폭발사고가 빈발하는 플랜트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사고가 날 때마다 뿌리 깊은 최저가낙찰제 문제를 지적해 왔다. 산업의 구조가 최저가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 자체에 제동을 걸지 않는 한 수많은 규제·단속·감독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취지에서 비록 300억원 이상 공공건설 현장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건설현장 적정임금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더욱 확대해야 한다.

조금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의외로 이 아이디어는 당장 우리 눈앞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노동계와 재계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내년 최저임금 말이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우리의 최저임금제도는 아직도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고리타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노동자의 건강한 삶을 위한 임금’이라는 목표도 추가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14년 최저임금 정책연구를 통해 시급을 13달러까지 인상하면 한 해 389명의 조기사망을 예방할 수 있고, 빈곤층의 수명을 5년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2022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캘리포니아의 올해 최저시급은 15.5달러다.

안전운임제가 화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제라고 불렸던 것처럼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문제는 결코 임금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임금은 노동자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저비용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발생하는 안전문제에 대한 훌륭한 대안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노동자들이 안전을 명분으로 임금만 올리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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