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달 31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는 ‘중대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제목의 이슈페이퍼를 발간했다. 중대재해는 그 이전에 관련한 수많은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지속적으로 무시된 결과로 발생한다. 상당수 중대재해는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의 미비로 인해서 발생하는 재래형 재해다. 그러나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의 미비를 단순한 인적 오류나 현장 감독자의 안전불감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선험적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중층적인 고용계약 관행 속에서 안전보건 시설과 장비에 투자해야 할 비용이 누수되고, 적정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지 못한 상태에서 납품일과 공기 등에 쫓겨 가장 기본적인 조치조차 점검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들이 대부분의 중대재해 이면에 드리워져 있다. 애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의 배경에는 산업재해를 불러오는 구조로서 ‘원인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요구가 가장 크게 작동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에 안전보건공단과 근로감독관에 의해 작성된 중대재해조사의견서를 국회의원실 등을 통해서 어렵사리 입수해 검토한 결과를 이슈페이퍼로 묶어 낸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기본 취지를 살려 원청을 포함해 기업경영에 실질적 책임이 있는 자와 법인에 분명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서 구조적인 부분까지 따져 묻는 심층적인 재해원인 조사가 그 출발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의 관심이 모아져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혹은 기업의 정보를 담고 있어서 등 여러 이유로 재해를 조사한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슈페이퍼는 비공개를 전제로 작성되는 기존 재해조사에 기초한 행정 및 사법 관행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이끌어 낸 사회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며 산재예방에도 기여하기 어려울 것임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또한 이슈페이퍼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살리는 재해조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① 신속하고 정확한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하다. 재해자 신원, 업무의 내용, 재해 당시의 구체적 상황 등을 최대한 사실관계에 부합하게 밝혀야 하며 그를 현장훼손 방지 조치를 명확히 시행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② 직접 원인, 기술적 요인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간접요인이나 구조적 요인과의 연계점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원인의 원인을 확인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에는 작업 방식의 변화, 적정 인력, 작업 인원상의 변동, 생산량이나 업무량과 관련된 시기나 계절적 변동, 시간 압박, 위험한 작업관행에 대한 묵인, 작업자의 위험 대응 조치의 권한 수준 등 다양한 간접 요인이 개입돼 있을 것이며 이러한 간접 요인이 관리되지 못하는 구조로서 안전보건관리체계, 원·하청 간 위험관리의 위계와 소통구조 문제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④ 재발방지 대책은 기록이 아니라 실행을 전제로 해야 한다. 접근 가능했던 재해조사의견서의 상당수는 재발방지 대책이 누락돼 있거나, 단순한 기술적·공학적 접근에만 집중돼 있었다. 기술적 접근과 예방대책은 전문가들의 조력이 필요할 수 있으며, 개선대책을 다른 사업장에도 적용하기 위해서는 행정력을 동원해야 할 수도 있다. ⑤ 재해조사의 결과는 공유되고 유포돼야 한다. 경찰과 판검사들만 돌려 볼 수 있고, 유사한 위험이 있는 기업과 노동자, 근로감독관, 안전보건 전문가와 연구자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보고서가 재해예방에 기여할 방법은 없다. ⑥ 노동자들이 참여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단지 조사 대상이나 참고인으로서 소환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원인을 밝히는 조사에서부터 책임을 묻고 따지는 사법절차,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과 사고에서 얻은 교훈의 사회적 공유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예방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⑦ 기업도 재해조사보고서 공개를 요구해야 한다. 다른 기업의 재해조사 사례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요구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다. ⑧ 노동자 대표 조직의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 총연맹·산별노조·지역본부가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조직적 대응 체계 구성과 역할 분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전 사례들을 분석하고 재해조사의 방법론을 학습하는 등 공동의 기획을 통해서 산별 조직과 지역본부마다 새로운 활동가, 현장 전문가들을 양성해야 한다.

보고서를 공개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현실적 한계가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해조사의 수준에 따라서 시기를 달리해 다양한 형식으로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신속하게 재해의 직·간접 원인과 사실관계와 당장 유사 업종에서 관리·점검해야 할 지점들에 대해서 전파해 유사 재해의 발생을 경고하는 형식의 보고서를 먼저 공개하고 이후 구조적 원인과 중장기적 예방과 재발방지까지 포함한 형식의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최소한 생명·안전 문제로서 중대재해에 있어서는 노사가 예방을 위한 모색을 함께할 수 있도록 공동의 경험을 쌓아 가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재해조사 책임이 있는 행정당국의 역할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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