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019년 2월20일 오후 5시29분께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와 풀리(도르래·Pulley) 사이에 끼여 숨졌다. 재해자가 보수작업에 필요한 자재를 가지러 가는 시간을 단축하려 정상적인 이동경로가 아닌 컨베이어벨트를 올라타 이동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사고의 발단이 됐다. 재해자는 작업현장의 낮은 조도와 소음, 분진 탓에 가동이 중지된 컨베이어벨트와 혼동해 가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올랐고 결국 참변을 당했다. 안전보건공단은 사고 뒤 작성한 재해조사의견서에서 재해예방 대책으로 부적정 통행 금지, 적정 조도 유지, 분진 제거 등을 제시했다. 원·하청 구조를 비롯한 구조적 사고 원인 규명은 없었던 터라 해법도 사업장 상황에 따른 대책에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동종·유사재해 예방 역할 못 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 상황실’이 지난달 3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하라’ 이슈페이퍼를 발간했다. 상황실은 “중대재해에서 기업의 책임을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서 구조적인 부분까지 따져 물어야 한다”며 “원청을 포함해 기업경영에 실질적 책임이 있는 자와 법인에 분명하게 책임을 물으려면 제대로 된 재해원인 조사가 출발”이라고 주장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뒤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하는 재해조사의견서는 사고 원인 규명과 사고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실은 주장했다. 현재는 동종·유사 사고 예방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라기보다 수사자료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사업주가 어떤 법을 위반했는지 협소하게 다루기 때문이라는 게 상황실 분석이다.

실제 재해조사 의견서는 사고 발생 당시 상황을 담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원인과 대책을 담는 조사자 의견 항목은 빠져 있기 일쑤다. 10건 중 9건은 조사기간이 1~3일에 불과한 데다 안전보건공단 전문인력의 조사권한 한계 등 여러 문제가 중첩돼 있다.

“사고원인 심층 검토해야”

상황실은 “재해조사보고서가 사망사고 원인을 기인물(도구·시설 등) 문제 수준에서만 다루고 있다”며 “기인물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보다 근본적인 차원인 관리·감독 문제를 다루지 않아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 보고서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2020년 2월11일 서울 영등포구 한 오피스텔 신축공사 현장에서 재해자가 추락사한 사례를 들었다. 재해조사의견서는 재해자가 지주와 입간판의 연결볼트 해체작업을 수행하던 중 약 5.5미터 높이의 지주 각파이프에서 떨어져 사망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데 정작 지주 각파이프가 본래 용도와 달리 사용된 배경은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상황실은 지적했다.

상황실은 “(지주 각파이프를) 왜 본래 용도가 아닌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어떻게 허용됐는지, 평소 작업 도구나 시설에 대한 관리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인지, 어디서 관리했어야 했는지, 비용이나 시간을 줄이려 그런 방식으로 작업한 것인지 심층적인 측면의 검토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개되지 않은 보고서 질 담보 못 해”

구조적 원인을 찾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에 따라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2019년 2월 현대제철 당진공장 하청노동자 사고를 담은 재해조사의견서가 부적정 통행 금지, 적정 조도 유지, 분진제거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그쳤지만 안전보건진단 결과 제시된 해법은 달랐다. 같은 사고와 관련해 김철홍 인천대 교수(산업경영공학과)가 작성한 ‘현대제철 당진공장 안전보건진단 조사 결과에 따른 제언’을 보면 문제가 됐던 작업환경 개선이 원·하청 구조에 의해 가로막혀 왔다는 점이 지적됐다. 원청과 동일한 안전시스템 적용이나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협의회 같은 안전관리시스템 개선 등의 구조적 대안이 제시됐다.

상황실은 “직접 원인, 기술적 요인에만 집착해선 안 되고, 원인의 원인을 확인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구조를 들여다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개되지 않은 보고서의 수준과 질을 담보할 방법은 없다”며 “재해조사 결과는 공유되고 유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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