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

우리 조합원은 서울시 공무원인 것 같다.

정부 지침에 따라 서울시장이 매년 임금의 항목과 수준을 정한다. 굉장히 꼼꼼하다. 지난해 기준 기본급은 210만3천800원인데 서울시 생활임금 이상을 보장하고 유사업종 임금수준을 고려한 것이다. 잦은 시간외노동을 예상해서 주 40시간 중 5시간은 법정 최저임금의 1.5배를 반영해 책정한다. 상여금은 기본급을 12로 나눈 값이고, 기타 통상수당은 19만원이다. 초과근무수당은 전년도 규모를 고려해 정한다. 4대 보험 회사부담분·차량유지비·통신비·사무실 임차료 또한 시가 정한다. 업무량 분석과 적정인원 산출도 시 몫이다. 이런 산정작업에 매년 세금 4천만원이 들어간다.

생각해 보니 공무원은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조합원들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시청 건물에 출입을 못했다. 우리 조합원은 도시가스회사 고객센터에서 일하니 가스회사 정규직일 가능성이 크다. 도시가스는 독과점 구조다. 서울은 서울도시가스·예스코도시가스·귀뚜라미·코원·대륜 5개 사업자가 지역을 나눠 갖고, 총 60여곳에서 고객센터를 운영한다. 서울도시가스 강북4고객센터처럼 센터 명칭에 회사와 지역이 잘 드러난다. 이 센터에서 일하는 검침점검원은 가구와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서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사용량을 검침하고, 고지서를 송달한다. 검침점검원은 총 1천36명, 한 사람당 4천555세대를 맡는다. 가스회사 입장에서 보면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다. 상식적으로 볼 때 ‘정규직’이거나 ‘전환 대상’일 것이다.

따져 보니 아니다. 서울도시가스의 사업보고서를 보니 이 회사 평균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 우리 조합원의 3배 이상이다. 다른 곳을 찾아보자. 가스라는 공공재를 다루고 안전 업무를 하니까, 한국가스공사와 한국가스안전공사가 떠오른다. 이 중 안전공사는 최근에 도시가스 검침점검원 노동실태를 조사·분석한 적도 있고, 제도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그런데 조직도를 확인해 보니 강북4고객센터 같은 조직은 없다.

여기도 저기도 아니다. 우리 조합원들의 회사는 어딜까. 유력한 후보는 고객센터다. 그래도 명색이 회사인데 이름이 ‘귀뚜라미에너지 제3고객센터’ 따위 일리는 없다. 서울도시가스 홈페이지에서 고객센터 현황을 확인하니 회사 이름은 확인이 안 된다. 대신 센터별로 대표자 이름이 나오는데 그게 센터마다 다르다. 맙소사! 검침점검원들은 용역업체 소속이다.

독자 여러분을 기만하려던 게 아니다. 서울시와 가스회사들이 우리를 기만한 것이다. 하는 일을 봐도 임금결정 구조를 따져도 검침원, 우리 조합원들은 ‘공공성’ 그 자체다. 그런데 소속은 이름 없는 용역업체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서울시는 “인건비로 산정된 금액은 인건비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하는데, 이 돈이 가스회사와 고객센터를 거치며 사라진다. 사라진 돈은 기본급 7만1천800원과 이에 따른 시간외수당 손해분, 연차수당 10만9천750원, 퇴직금 손해분까지…. 일 년으로 따지면 225만400원이다. 한 달치 월급을 누군가 훔쳐 가는 것이다.

도둑들이다. 고객센터 수수료를 산정한 세화회계법인에 따르면, 용역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무려 9.53%나 된다. 전 산업 영업이익률 4.2%의 두 배가 넘는다. 서울시가 적정이윤을 보장해 주니 이건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다. 용역업체가 대놓고 도둑질을 하는 사이, 가스요금은 8.4%나 올랐다. 원청인 가스회사는 배당잔치를 벌였다. 상장사인 서울도시가스는 올해도 68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주주의 상당수는 일가친척이다). 용기 내서 신고했더니 서울시는 듣는 시늉조차 안 한다. 노동자들 월급과 시민들 요금을 빼돌린 도둑들을 돕는다.

도둑을 돕는 자 또한 도둑이다. 그래서 검침점검원들은 24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로 달려간다. 이 싸움은 도시가스 고객, 서울시민,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하는 싸움이다. 여기저기서 월급·요금·공공성이 줄줄 샌다. 여기, 도둑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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