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처음엔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2월 원하던 방송 포스트 프로덕션(방송사에서 도급을 받아 영상편집, 색보정, 음악·음향 추가, 특수효과 등 영상 후반작업을 수행하는 곳) ㅇ사에 입사한 김지연(28·가명)씨의 기대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출근시간은 오전 10시였지만 ‘탄력적 근무’라는 이름 아래 정해진 퇴근시간은 없었다. 김씨는 “업무량이 많으니 하루종일 일해도 일이 안 끝난다”며 “퇴근시간이 평균적으로 오후 10시이고, 동료 중 정오에 출근해 다음날 정오에 퇴근하거나 새벽 5시에 퇴근했다가 5시간 만에 다시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거의 매일 연장근로를 했지만 월평균 급여는 대부분 200만원을 넘지 못했다. 연차는커녕 남들 다 쉬는 법정공휴일에는 업무가 더 몰렸다. 참다못해 문제를 제기해도 “과거에는 네 달 동안 하루도 못 쉬고 일했다”와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결국 그는 2월 중 퇴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회사는 김씨가 입사한 지 만 1년이 되기 전인 1월31일까지만 일하라고 했고, 김씨는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떠밀리듯 그만둬야 했다.

ㅇ사가 근로기준법을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5명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데, 회사는 이를 교묘히 악용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ㅇ사에 입사했지만 그의 고용보험이 가입된 곳은 ㅅ사(ㅇ사의 과거 회사명)였다. 10명 넘는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회사가 법인을 쪼개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것이다. 입사할 당시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탓에 김씨는 퇴사 후에야 체불임금 진정을 준비하면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공인노무사는 “5명 미만 사업장에는 노동시간 제한은 물론 가산수당 개념도 없어 노동시간 산정조차 하지 않고 기본급만 지급한다”며 “문제제기를 하면 해고 등의 불이익을 당하기 쉬우니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 노무사는 “위장 사업장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업장 규모에 의한 차별을 폐지하는 것”이라며 “사업장 규모를 축소할 유인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는 ㅇ사쪽에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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