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동연구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경영 책임자가 지켜야 할 안전 의무가 모호하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는 재계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제도는 빠르게 서구화되고 있지만 기업의 위험관리 방식과 마인드는 과거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산업안전보건포럼을 열었다. 올해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소홀히 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원청 지시로 일하다 숨졌는데…
무죄 선고받은 원청·책임자”

전형배 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2018년 대법원 선고로 확정된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 판례를 언급하며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한 형사처벌의 한계를 지적했다. 2013년 1월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은 경기도 화성 반도체공장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에 대응하다 숨지거나 다쳤다. 검찰은 삼성전자와 협력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했지만, 삼성전자와 당시 책임자(인프라파트장)는 2018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협력업체와 관리 책임자도 2심에서 1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다. 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전형배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기업 범죄의 근로자 범죄화”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면서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자를 주요 책임자로 지목하는 법원의 판단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안전보건에 비용과 노력을 투자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재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법안이 모호해 지키기 어렵다”는 의견에 전형배 교수는 “1970년대 이후 서구의 안전보건 법령과 감독의 트렌드는 기업에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위험성평가의무를 부여하고 진단 결과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안전보건에 관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한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서서히 서구의 것을 따라가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종전과 같이 정부가 각 사업장별로 지켜야 할 사항을 구체화해 주길 기대한다”고 꼬집었다. 전 교수는 “제도는 빠르게 서구화되는데 기업의 위험관리 방식과 마인드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은 “모든 사업주는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so far as is reasonably practicable), 근로를 제공하는 모든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 및 복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영책임자 포괄적 의무 규정은 노동운동 성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는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중형주의를 기초로 하면서 (경영책임자의) 의무 내용이 불명확하다”며 “기업 등 수범자는 안전역량 향상보다는 형식적인 안전보건대책에 치우치고 형사처벌 회피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이런 경향이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예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3호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사업·사업장 종사자의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위해 유해·위험요인의 확인·개선에 관한 업무절차 수립 및 이행점검과 조치를 하도록 돼 있는데 이 같은 의무사항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법과 법 해석에서 명확성의 원칙,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 등 위헌 소지가 많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경영자의 의무는 어쩔 수 없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반면 구성요건으로서의 의무는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는 모순이 있다”며 “제정된 시행령이 이 문제를 완전히 해소했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그 내용이 불명확해 위헌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경영자 의무의 일반성을 인정하고 이를 국가의 산업재해 통제 조치의 발전 혹은 노동운동의 성과로 인식해야 한다”며 “안전범죄에 대해 경영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포괄적인 구성요건을 설정해야 하고 그 자세한 내용은 하위법령과 규칙, 고시 등이 구체화하도록 위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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