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수천명의 안전을 홀로 책임지는 승무원부터 ‘골병’을 달고 사는 정비사, 불특정 다수 시민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역무원,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땅 밑에서 온종일 근무하는 기술자까지 궤도노동자들이 위태로운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공공운수노조와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궤도협의회)는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현실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승무 △차량 △역무 △기술 4개 직종의 노동환경을 증언했다.

피로와 스트레스 유발하는 ‘교번근무제’
“인력감축 따른 업무량 증가, 근골격계질환 유발”

철도·지하철 승무 분야 노동자는 열차운행 스케줄에 맞춰 근무하는 교번근무제를 적용받는다. 한창운 궤도협의회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기관사들은 불규칙한 생활리듬을 만성적으로 조장하는 근무형태에 맞춰 일하고 있다”며 “교번·단독·차상 근무의 특성으로 인해 일반 교대근무보다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생활적 소외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2015년 안전보건공단의 철도기관사 직업건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관사들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공황장애(4배)·우울증(2배)·외상후 스트레스장애(4배) 발생 비율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열차 차량을 정비하는 노동자들은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43명이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 가운데 39명이 차량 분야 노동자였다. 현장 노동자들은 인력감축에 따른 업무량 증가를 산재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황수선 서울교통공사노조 차량본부 사무국장은 “철도안전법 어디에도 전동차 1량을 정비하기 위한 적정인력에 대해 규정돼 있지 않다”며 “정비인력 산정 기준이 운영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데, 재정악화를 빌미로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이 산재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스크 착용 안내에 폭행당하는 역무원,
환기 안 되는 터널에서 일하는 기술자

역무 분야 노동자들은 감정노동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감정노동 피해사건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올해 3월까지 피해 사례 375건이 접수됐다. 주취폭력이 146건으로 가장 많았다. 질서계도(79건)와 마스크 착용 단속(71건), 부정승차 단속(31건) 과정에서도 피해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2020년 7월에는 마스크를 미착용한 승객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안내하는 직원을 폭행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도 있었다. 노기호 서울교통공사노조 감정노동 감독관은 “역무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감정노동 피해 사례는 ‘중대심리재해’라고 할 수 있다”며 “다수의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하는 폭언과 폭행, 성희롱, 모욕은 정신적 후유증이 심하다”고 말했다.

기술 분야 노동자들은 심야에 터널 안에서 작업하면서 라돈과 디젤연소물질, 미세먼지, 소음에 노출되고 있다. 2005년 34세 노동자가 지하 역사와 터널에서 석면과 디젤연소물질에 노출돼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후로도 폐질환과 관련한 직업성 질환에 따른 산재가 지속적으로 승인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기술직 노동자 한상국씨는 “지하터널은 영업종료 후 환기 설비를 거의 가동하지 않고 있다”며 “작업자들은 유해물질에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궤도 분야 노동자들의 위험은 다종다기해서 하나의 무엇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공통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훼손하는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무처장은 철도·지하철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근무제도 개선을 비롯해 △지하공간 공기질 관리 전략 마련 △2인1조 작업 세부화 △지하 침실을 지상으로 옮기는 전략 마련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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