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꽃비가 흩날리는 4월이다. 꽃비처럼 노동자들도 일터에서 떨어져 내리는 처절한 현실 속에서 한가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오늘은 영화 이야기다. 길거리에서 함께 외치고 주장하는 일이 만만찮은 격리의 시대, 당분간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뭔가 나눌 거리가 있는 다큐멘터리로 <다운폴-더 보잉 케이스>를 소개한다.

영화는 2018년과 2019년에 발생한 두 건의 보잉 737MAX 여객기의 추락사고를 다루고 있다. 2018년 10월29일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서 737MAX가 이륙 직후 추락해 탑승자 189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직후 제작사 보잉은 조종사의 미숙함과 실수를 원인으로 내세우며 자사의 최신 기종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음을 주장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인다. 보잉의 총력전은 효과를 거둬 미연방항공국(FAA)은 737MAX의 운항을 제한하는 ‘이륙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5개월 후 에티오피아 볼레 국제공항에서 또 다른 737MAX가 마찬가지로 이륙 직후 추락해 탑승자 157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전 세계 항공사들과 FAA는 그제야 해당 기종의 이륙을 금지하고 기체의 결함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사고 원인은 737MAX에 새롭게 탑재된 MCAS라는 장치의 결함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보잉사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조직적으로 관련 정보를 철저히 함구해 왔다는 점이다. 737MAX는 보잉이 에어버스사의 신형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737 기종의 덩치를 키워 급하게 시장에 출시한 기체였다. 보잉은 시장 장악을 위해 기존 737 기종을 조종하던 파일럿은 추가적인 교육 없이도 737MAX를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을 판매전략으로 삼았다. 이는 파일럿의 추가 교육비용과 시간이 큰 부담이었던 항공사들에게 엄청난 메리트였다. MCAS는 비행기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장치로 파일럿들이 분명히 숙지해야 할 사항이었지만 보잉의 판매정책에 의해 이 장치는 비밀에 부쳐진 것이다. 결국 파일럿들은 MCAS의 존재조차 모른 채 조종석에 앉았고 이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켜 비행기가 스스로 땅으로 내리꽂히는 동안 원인을 파악할 수도, 적절한 대응을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보잉이 저지른 만행을 조목조목 폭로하지만 사고 원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갑자기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항공기 업계에서 최고의 안전성으로 신뢰받던 보잉사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지 면밀히 살펴본다. 경영진 교체에서 시작된 경영방침 변화와 시간이 흐를수록 축소되는 안전관리조직, 그 속에서 추악하게 변해 가는 조직 문화와 이에 절망하고 떠나가는 사람들, 구조조정으로 대량해고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차근차근 펼쳐진다. 안전성을 점검하는 인력은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고, 회사는 매일 직원들에게 회사 주가를 확인하며 ‘수익성’에 몰두하기를 강요했다. 생산속도의 압박에 지친 노동자들은 위험천만한 실수들을 연발했다. 동료가 중대한 안전점검 사항을 놓치고도 ‘그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했다며 서로 한탄하는 장면은 보잉이 일으킨 참사가 필연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보잉은 20년에 걸쳐 눈앞의 이익을 좇느라 위험을 키워 왔던 것이다.

많은 언론은 자본과 기업이 외면하고 증폭시킨 위험의 결과인 사고와 재난의 원인을 ‘안전불감증’이라고 진단한다. 때로는 사업주들이 나서서 직원들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며 안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다그친다. 노동자들의 정신상태가 글러 먹어서 사고가 난다는 참으로 편리한 분석이다. 그러나 영화가 여실히 보여주듯 안전불감증은 누군가 타고나는 선천성질환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급성질환도 아니다. 경영진의 철학과 방침에서 시작돼 조직의 구성과 문화를 망치고 노동 조건과 환경이 악화되는 연쇄작용으로 발현하는 조직의 질병이다. 생각해 보면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는 자체로도 난센스다. 불감증이라는 자극적인 이름도 그렇지만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두고 ‘위험’불감증도 아닌 ‘안전’불감증이라니. 안전불감증이 재난과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의 죽음은 심장마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영화 말미는 346명 사망자들의 유족들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가족들의 가장 큰 질문은 ‘왜 두 번째 사고를 막지 못했는가?’였다. 첫 번째 사고의 원인은 왜 감춰졌고, FAA는 왜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왜 이륙금지조치를 통해서 구할 수 있는 157명을 구하지 못했는지 보잉과 정부와 의회에 진실을 요구했다. 가족들의 그 끝이 어떠했는지는 독자들께서 직접 확인하고 평가하기를 권한다.

노동자들의 죽음도, 시민들의 죽음도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면 또 다른 재해와 참사를 막을 수 없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는 피해자들의 온전한 치유와 회복도 불가능하다.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현장을 찾아 노동자의 과실을 어처구니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에 우리는 아직 살고 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안전불감증이 결국 경영책임자의 철학과 방침에서 시작되는 것임에도 그들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위헌이라며 아우성치는 세상이다.

꽃비가 흩날리는 4월이다. 이 잔인한 계절에 시간이 멈춰 버린 세월호 가족들의 곁에 부디 많은 이들이 함께해 주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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