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디아 총리 모디와 화상회의를 가졌다. 바이든은 모디가 러시아에 맞서 미국 편을 들어 주길 원했으나, 모디의 답변은 “인디아 정부는 인디아의 국익을 우선한다”는 원칙을 되풀이했다. 그동안 중국과 대립하면서 인디아가 미국과 밀월관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두 정상은 합일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인디아 외무장관 자이샨카르는 러시아 석유를 수입하지 말라는 요구에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했다. “내가 알기로 인디아의 한 달 수입량은 유럽국가들의 하루 수입량에 불과하다.”

지난 5일 열린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석상에서 우크라이나 부차(Bucha)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은 러시아군의 만행이라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으면서 인디아 정부는 “독립적인 조사(independent investigation)”를 강조했다. ‘독립적인 조사’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독립적인 조사’에 대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일어난 전쟁 범죄 혐의를 논의하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개최를 방해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은 우크라이나 군대와 경찰이 저질렀다고 반박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년 전 미국과 서방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범죄국가라며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단 하나의 대량살상무기도 발견하지 못한 역사적 경험을 거론하면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도 가짜뉴스와 거짓정보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 쪽만 내놓는 게 아니다. 미국 정부의 군사적 침략에 비판적인 서방의 독립 언론인과 연구자들도 우크라이나 군대와 경찰을 민간인 학살범으로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스콧 리터(Scott Ritter)다. 그는 미군 해병대 정보장교 출신으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이라크에 대한 유엔 무기사찰단원으로 활약했다. 이라크 무기사찰단이 수행한 30개가 넘는 임무 중에서 리터는 수석사찰관으로서 14개의 임무를 주도했다. 이라크 정부의 비협조를 이유로 사직한 그는 이라크 침공과 무력에 의한 정권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이라크전쟁에 관한 책에서 “이라크가 보유한 대량살상무기의 90~95%는 검증 가능하게 제거됐다. (중략) 1998년 12월 현재,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보유했거나 이를 만들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반대로 수많은 증거는 이라크 정부가 (유엔 안보리의 요구를) 잘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 바 있다. 스콧 리터는 우크라이나에서 학살된 민간인은 러시아군에 협조한 혐의를 받는 “부역자들(collaborators)”로 이들을 학살한 집단은 “우크라이나 국가경찰(national police)”이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돈바스에 십 년째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 탐사보도기자 조지 엘리어슨(George Eliason)은 현재 사태를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광고(PR)전쟁”으로 본다. 전황에 대한 서방 언론의 보도가 실제 일어나는 현실이 아닌 우크라이나 정보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규정하는 엘리어슨은 “우크라이나인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수도 키이우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전쟁을 우크라이나 국경 밖으로 확대시키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족주의자들은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비디오게임의 아바타처럼 이용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학살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러시아를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는 부차 시의회 엘레나 우크라인스테바(Elena Ukrainsteva)가 학살이 일어나기 적어도 하루 전에 부차 시민들에게 한 경고를 알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극우 군사조직인) 아조프 대대(Azov Battalion)가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부차를 청소할 것이기 때문에 집안에 머물라고 경고했었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지지를 상징하는 푸른색 완장을 차지 않은 이들을 사살해도 되느냐고 묻는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군사령관이 “그년을 쏴 버려”라고 답하는 영상이 퍼지고 있다.

엘리어슨은 러시아군이 제공한 식량을 받거나 푸른색 완장 대신 항복을 의미하는 흰색 완장을 찬 민간인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보좌관인 안톤 게라쉬첸코(Anton Gerashchenko)가 러시아군이 물러난 부차에 나타나 “러시아군과 교류한 자는 모두 적발해 처벌해야 하고 주민들은 범죄자를 고지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지원한 식량을 갖고 있거나 흰색 완장을 찬 이들은 러시아군과 교류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 엘리어슨은 점령 지역을 떠날 때까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제거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수도 키이브 지역에 대한 러시아군의 작전 자체가 영구 지배가 아닌 임시 점령을 목적으로 했다고 지적한다.

전쟁은 일방이 아닌 쌍방을 전제로 한다.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해 학살된 사람이 가해자가 되고 학살자가 피해자로 뒤바뀌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자들이 결국 처벌받지 못한 굴욕의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일방적이다. 미국과 서방 언론을 그대로 베끼는 기사들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끼칠 잔인한 결과들이 두려운 요즘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