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3년간 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한 노동자에게 회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사용자가 보호구와 배기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업무상 질병 인정
사측 “극히 소량 노출돼 책임 없다” 반박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이원석 부장판사)는 최근 계면활성제 제조업체 직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가 소송을 낸 지 약 4년 만에 1심 결론이 나왔다.

A씨는 2001년부터 8년간 충북 진천의 계면활성제 제조회사인 D사 대표가 운영하는 식료품회사에서 근무했다. 주로 계면활성제 실험과 연구를 담당하면서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인 포르말린을 투입하는 작업도 맡았다. 포름알데히드는 백혈병의 원인이 되는 유해물질이다.

이후 A씨는 식료품회사에서 D사로 옮겨 2009년부터 2년간, 중국 법인에서 2014년까지 같은 업무를 수행했다. 매달 2~3회씩 포름알데히드가 들어 있는 방부제 20리터를 혼합용기에 붓고, 연 1~2회 포름알데히드를 분할해 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러다 2015년 1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도 “포름알데히드의 순간 노출량이 많다”며 업무상 질병을 인정해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지급했다. 이에 A씨는 보호구 없이 작업해 백혈병이 걸렸으므로 일실퇴직금·기존 및 향후 치료비·위자료 등을 지급하라며 2018년 5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사측은 작업장에 배기시설을 갖췄고, 보호구가 마련됐다며 백혈병 발병에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극히 소량의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됐고, 산재 판정도 A씨의 백혈병을 진단한 병원의 역학조사에 근거했다며 객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쳤다. 나아가 “A씨가 약을 처방받아 통원 치료를 받으며 취업할 수 있는 상태”라며 노동력이 상실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배기시설 부족에 보호구 미착용
법원 “안전장치 없이 과다 노출로 발병”

하지만 법원은 회사의 귀책으로 백혈병이 발병한 것이라며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업장의 일부 작업과 관련해서만 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었다”며 “회사는 소요량에 비해 적은 수의 보호구를 구비하고도 현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작업자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는데도 관리·감독이 소홀했다는 취지다.

공단의 경고에도 시정 조치가 없었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작업자가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화학물질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경고를 받고, 보호구 구비와 착용 상태, 산업안전보건표시 부착 상태, 배기시설 및 환기 상태 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A씨가 평소 궤양성 대장염을 앓아 백혈병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측 주장도 배척했다. 2012년에 이미 투약을 중단할 정도로 증상이 호전됐고, 궤양성 대장염은 만성이 아닌 급성 백혈병의 원인 중 하나라고 재판부는 봤다.

이를 근거로 D사에 80%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질병은 A씨가 배기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작업장에서 보호구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포름알데히드를 취급하는 업무에 종사하던 중 과다하게 노출됨으로써 발생했으므로 D사는 A씨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