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환의 과정에서 고용서비스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어요. 노사관계 서비스와 일자리 서비스 둘 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죠. 노사발전재단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출범한 노사발전재단이 지난 5일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재단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정형우(60·사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한 가지만 잘하는 맛집이 아니라 가짓수가 많은 푸짐한 한정식 같은 ‘종합고용노동서비스기관’으로 노사발전재단이 도약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간 예산구조를 바꾸고 인력운영을 확대하며 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그리고 올해는 전국 5개 지역에 지역지사를 만들어 도약을 위한 정검다리를 놓을 예정이다.

“인건비 없이 사업비로만 운영되는 예산구조
15년 만에 칸막이 없앴다”

- 재단이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업을 맡아 ‘고용노동 종합서비스기관’으로 불리지만, 일각에서는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재단의 역사는 ‘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노사주도의 정책사업 추진 노사정 기본합의’에 따라 1997년 설립한 한국국제노동재단에서 출발한다. 노사가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상생하는 데 역할을 하고자 재단을 만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2011년 3월 국제노동협력원과 노사공동전직지원센터가 재단으로 통합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3개 기관을 합치다 보니 정체성 혼란을 겪는 시기도 있었고, 구심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내부에 혼선을 겪는 시기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중장년 고용서비스를 비롯해 일터혁신 사업, 국제 교류협력 업무나 차별예방과 개선사업에 전문성이나 역량 면에서 우리를 따라올 기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 2020년 4월 취임 이후 2년간 가장 고심하고 주력한 분야가 있다면.
“취임 후 석 달간 고민하면서 재단의 종합발전계획을 구상했다. 2011년 3개 기관이 통합했을 때의 문제점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보수나 직군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 채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한마음으로 일하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을 3개 기관의 사업비로만 받는 구조여서 인건비를 개선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 실제로 재단은 고용노동부 13개 산하기관 중 인건비 수준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노동부 산하기관 평균임금에서 2천만원이 적은 수준이다. 2011년 통합 이후 11년간 예산과 사업에 칸막이가 있어 인건비를 올릴 수 있는 구조나 여력이 거의 없었다. 직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직원을 이탈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터혁신사업의 경우 지금은 우리가 총괄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지만 그동안 민간업체와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민간에서 우리의 숙달된 컨설턴트들을 빼내 가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다 보니 재단 인력은 아주 고참이거나 아주 신참으로 중간허리가 없어져 업무의 연결성과 전문성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재단의 정체성 위기까지 우려됐다.”

“목표는 전국 12개 지역지사 설립해
원스톱 고용노동 종합서비스 제공하는 것”

- 지난해부터 예산구조가 바뀌고 재단 역사상 처음으로 경영평가 성과급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동안 재단 예산은 13개 사업비로만 편성돼 각각의 사업비 안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뽑아내야 해 지나치게 경직된 구조였다. 기금으로 운영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를 제외하면 재단은 노동부 산하기관 중 유일하게 출연금이 없는 기관이다.

재단의 근거가 되는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노사관계발전법)은 국가가 재단 사업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이 조항을 ‘출연’도 할 수 있도록 개정하려고 여러 정부기관을 찾아가 호소했다. 그런데 예산당국이 출연기관도 보조기관으로 바꾸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대신 운영비와 별도로 인건비와 경상경비를 통합 항목으로 만들어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예산운영이 가능한 방안을 마련했다. 당시 예산 편성이 거의 마무리된 상황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의 서면 요청으로 기획재정부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어렵게 통과했다. 인건비가 생기니 이를 근거로 경영평가 성과급을 요구할 수 있었고, 직원들에게도 좋은 시그널이 되고 있다.”

-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역지사 설립’이다.
“올해는 재단이 고용노동 종합서비스기관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시기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서울 등 12개 센터와 업종으로 특화된 금융센터 1개가 있고 차별없는일터지원단은 전국에 6개 지역거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재단의 고용노동 종합서비스는 13개 단위 사업으로 또 나뉘어 있다. 지역에 거점을 두고 지역중심의 통합서비스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단 사업은 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중소기업은 일자리 변화가 크기 때문에 일자리 수요도 많은 곳이다. 분절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한다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최종 목표는 12개 지사를 만드는 것인데 지난해 승인된 곳은 5개 지사다. 올해 하반기부터 지사 설립이 본격화될 것이다.”

“고용회복 안심할 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격차 해소”

- 정권교체와 함께 일자리 정책도 변화가 예상된다. 재단은 올해 어디에 중점을 둘 예정인가.
“재단이 최종적으로 그리는 그림은 종합고용노동서비스기관이다. 다방면으로 다 잘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산업전환과 노동이동의 이슈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큰 폭의 일자리 변동이 예측되는데, 전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 당사자다. 일단 대화가 먼저다. 노사가 터놓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데에 재단이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사람의 이동은 고용서비스 수요를 부른다. 노사관계 서비스와 일자리 서비스 둘 다 중요하다. 이 둘을 다 잘할 수 있는 기관은 재단밖에 없다. 사실 재단이 하는 서비스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백화점식이라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 보면 이만한 장점도 없다. 가짓수가 많은 푸짐한 한정식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단편적으로 하나만 잘하는 맛집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같이 묶이고 엮여 적재적소에 필요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 새 정부는 민간 주도 일자리 정책을 공약했다. 노동부에서 고용정책을 만드는 업무를 했고 재단에 오기 전에는 일자리 정책을 컨트롤하는 일자리위원회에서 일했다. 지금의 노동시장을 어떻게 진단하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은 양극화가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환경이 어려우면 통계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진다. 청년·여성 고용은 여전히 어렵고 비정규직의 고용상황은 플랫폼노동을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더 나빠졌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보호·준거 틀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 중요한 노동기준을 정작 작은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못한다는 역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공정한 노동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상황까지 덮치면서 노인일자리에 집중했다. 사회보장이 충분하지 못한 조건에서 고용보다는 소득보조 차원에서 일자리 정책이 쓰였다. 현재 수치상으로는 고용회복이 됐을지언정 안을 들여다보면 더 나빠진 사실을 체감할 것이다. 어떻게 격차를 해소할 것인가, 새롭게 나타나는 수많은 형태의 고용에 대해 어떻게 룰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새로운 정부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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