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세상에는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게는 저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이 세상을 함께 견디고, 두 번째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삶은 더욱 지옥이 된다. 어디선가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동의했다. 쉼 없이 들려오는 일터에서의 죽음 소식은, 타인의 생사에 반응하는 두 종류의 인간을 함께 불러오기 때문이다.

동료 조합원의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즉시 전국에서 모여 대책위를 꾸리고 사고조사를 하고 중대재해 대응 투쟁을 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내 가족을 잃었을 때를 기억하며 산재피해 유족에게 달려가 그 곁을 지키는 이들도 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누구도 시키지 않은 세미나와 연구 등을 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도 주변에 참 많다. 반면 왜곡된 정보를 쏟아 놓으며 죽음을 연료 삼은 열차가 혹시라도 지체될까 조바심을 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 무지(無知)하거나 무도(無道)한 자들의 글도 넘친다. 사고가 계속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게 만들었다는 실적을 자랑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큰 시장’이 열렸다고 선전하는 인간들도 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쌓아 올린 기여 덕에, 산업안전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압도적인 재범률을 기록하고 있다. 기업은 반복되는 죽음이 “통제하지 못하는 돌발상황”이라며 “중대재해 방지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중”이라는 입장을 매번 거의 동일하게 붙여넣기 하고 있지만, 정말 그러한가?

대표적인 중대재해 다발사업장인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000명의 죽음’이 매년 갱신되는 곳이다. 이달 초에 벌써 올해 들어 두 번째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회사는 재발방지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냈지만, 지난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회사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2일 발생한 중대재해 직후 노동조합이 지적한 사항 중에는 위험성평가 미실시, 관리감독자 미배치 등과 같이 매번 사고 때마다 동일하게 지적되는 내용이 이번에도 버젓이 등장했다.

현대중공업 사업장 내에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35건의 중대재해 실태분석 결과에서도 동일한 사고 원인이 유형별로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주희 등, 현대중공업 중대재해 사고백서Ⅰ, 2021). 안전장치·시설 문제, 조도불량, 위험성평가 미실시, 표준작업지도서 미준수, 관리감독자 미배치, 무리한 작업계획 등 전체 중대재해 중 10%도 안 되는 일부 사건에 대한 제한적인 조사만으로도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짚어 낼 수 있었다.

지난 사고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들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기존 사망사고 발생 이후 노동조합의 표준작업지도서·위험성평가서 개선 요구가 있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다 8개월이 지나서야 TF 구성함 △이 사건 사고 이후 또다시 전사 표준작업지도서·위험성평가 재정립이 대책으로 등장했으나 이행 없이 반복됨 △사고 발생 전 조찬회에서 표준작업지도서·위험성평가 미준수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같은 원인의 재해 발생 △중대재해 차단을 위한 안전점검 활동 계획에서 사고 위험에 대해 인지했음에도 위험성평가 등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됨” 같은 문장들이 한가득 존재한다.

이 지경을 만들고도 통제할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하는 기업을 우리는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나.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로 기업 부담이 크다는 아우성은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히 낼 수 있는 소리인가. 회사의 숱한 말과 달리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이고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살릴 수 있는 삶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혼신의 노력’ ‘최선’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말하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법 시행일을 기점으로 새삼스럽게 1호 사건, 2호 사건 등 중대재해에 번호를 매기기 시작하더니 각 사건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지, 이 법을 적용해서 처벌할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기사로 온통 도배되고 있다. 당장의 재해뿐만 아니라 그 너머 노동의 자리에 더 많은 눈길이 머물길 바란다. 사고 즉시 발표되는 기업의 입장문, 최고안전책임자(CSO) 같은 번듯한 외관에 가려 현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왜 우리의 일터가 이토록 참혹해졌는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시간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수고를 감당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고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하게 하는 방법인 것과 동시에 우리가 이 지옥 같은 현실을 함께 견디며 바꿔 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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