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흥규 공인노무사(스마트법률사무소)

올해 1월27일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그럼에도 여러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고, 법의 취지와는 달리 최고경영층의 처벌에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취지이지만 예방보다는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기업의 실질적인 재해예방 활동을 촉진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기업은 안전보건 관련 분야에 적지 않은 비용을 쓰고 있지만 재해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령 준수가 아닌 처벌 회피가 목적이다.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와 제대로 된 기능발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는 중대재해 대응 마인드를 확 바꾸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고, 그 핵심이 바로 ESG경영일 것이다.

ESG경영이란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칭으로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재무적 성과와 위험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ESG경영은 2006년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이 ESG를 고려한 투자의 필요성을 발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최근에는 기업 평가에도 ESG를 반영하고 있다. 투자 유치, 고객의 요구 증대, 그리고 정부 정책에 있어서도 ESG경영이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ESG경영이 중대재해처벌법과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인데, 이는 곧 ESG경영의 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핵심 과제다. 즉 기업의 가치 상승을 위한 방법으로 최근 ESG경영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고, ESG경영은 산업안전에 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배구조 차원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는 것은 ESG경영의 사회적·지배구조 핵심 과제를 제대로 달성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기업이 ESG경영 실천을 통해 산업안전을 확보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물론 국내 ESG경영의 현 주소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대부분 기업들의 ESG경영 실천은 ESG위원회를 만들거나 관련 업체에 컨설팅을 맡겨 조직을 개편하고 매뉴얼을 만드는 것에 그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대형 건설사들이 ‘1호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법 시행일인 1월27일부터 설 연휴가 끝나는 2월 초까지 현장 작업을 중지하기로 결정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중대재해에 대응하는 준법경영 차원의 사회적 책임 이행과, 지배구조 차원에서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체계 구축·이행이라는 ESG경영의 목적 달성을 어렵게 할 것이다.

결국 산재를 줄여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ESG경영 접근법이 ‘형식’이라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 ‘실질’이라는 정상궤도에 올라야 한다.

ESG경영으로 전환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50명 미만의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됐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다. 따라서 대응이 미흡한 사업장은 ESG경영의 출발점으로서 기업의 여건과 환경에 맞는 어젠다(agenda)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재해예방 예산 투입을 비용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율적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 최고안전책임자(CSO; Chief Security Officer) 선임, 적극적인 재해예방 활동 구축 및 점검 같은 선제적 대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과 처벌이라는 큰 위기로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에 기업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할 수 없다면, ESG경영을 통한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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