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노회찬재단 이사장)

20대 대선, 과거를 향한 투표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시민들은 미래의 전망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응징을 선택했다. 미래를 위한 투표가 아니라 과거를 향한 투표였다.

경제정책, 사회복지, 기후변화 대응, 코로나19 상황 대처, 외교문제 등에서 역량이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다른 영역들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후보가 선택됐다. 당선자가 유일하게 능력 우위 평가를 받은 영역은 공정사회 실현이었는데, 그가 지향하는 ‘공정’은 존 롤스(John Rawls)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얘기하는 ‘평등을 위한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 심화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조작물에 불과한 ‘기득권세력의 공정’이다.

군사독재정권 시대가 끝나고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됐지만 대선과 총선은 국가권력을 청군-백군으로 나누어 줄다리기하는 보수 기득권세력의 운동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대 대선 결과도 그러하다.

네거티브 공세가 시민들을 짜증나게 했던 역대급 비호감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새 정부의 비전을 얘기하지 않고 격투기 선수의 몸동작으로 정권교체만 외쳤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이 후보로서 시민들과 소통하는 주된 방식이었다. 혐오감에 기댄 선거전략은 승리했다.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없었던 탓에, 후보와 그의 정당이 내놓은 대선공약집에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한지 가늠할 수 없다.

우리 앞에 펼쳐질 사회가 어떤 세상인지, 알 수 없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개표 방송을 보며 울부짖다가, 가위눌리는 꿈을 꾸고, 새벽녘에 일어나 흔들리는 치아를 움켜쥐게 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게다.

24만여표, 0.7%포인트의 초박빙 승부. 시민들은 오만하고 위선적인 정치세력을 응징했을지언정 불확실한 미래의 무능한 정치세력에 절대권력을 쥐어주지는 않았다. 새 정부는 40%를 밑도는 여당 의석으로 출범한다. 식물 대통령과 식물 국회의 식물 정치는 시민들의 정치혐오감을 극대화하는 한편 양당 독점체제 종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할 수 있다. 진보정치의 공간이 커지고,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전망이 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윤극대화를 위한 노동정책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은 혁신성장 전략으로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글로벌 선도기업과 강소기업의 공존·상생을 주장하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등으로 납품단가 제도를 개선하고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예방하고 피해구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등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한다.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혁파와 반도체 초강대국 공약은 재벌 거대기업 주도 성장전략을 표방한 것이라서 새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들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중소기업의 이윤율을 정상화하고 대기업-중소기업 이윤율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의 이윤주도 성장 전략 강화로 축약된다. 노동정책은 이윤주도 성장 전략의 함수가 되고 노동정책은 노동문제 해결 여부로 평가되지 않고 이윤극대화 성과로 평가된다. 이윤주도 성장 전략의 폐해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 훼손과 노동기본권 억압으로 나타나는데, 그 폐해가 집적된 결과물이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은 임금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고, 비정규직의 임금 등 물질적 보상 수준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윤 당선자의 공약을 검토하면 새 정부 노동정책의 방향을 간파할 수 있다.

첫째, 비정규직 규모를 감축하기 위해 상시적 업무와 생명·안전 관련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법제화가 절실하다. 윤 당선자는 생명·안전 관련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은 찬성하지만, 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유보 입장을 표명했다.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을 법적으로 강제할 경우 노동시장에 미칠 부작용이 우려돼 비정규직 사용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 고용보험료율을 가중하는 등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축소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둘째,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조건 양극화 경향성을 억제하고 동등처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실현돼야 한다. 윤 당선자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가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하에서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고 임금체계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직무가치와 작업성과를 반영하는 임금체계 도입을 제안한다. 한편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정을 보상하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고용불안정수당을 지급하고 사회보험료를 감면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셋째, 사용자가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노무제공자를 사용할 경우 노동자는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용계약 체결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자들의 노동 3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노동기구(ILO)의 원칙이다. 윤 당선자가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 입장을 표명한 바 있는데, 근로자 개념 정의 확대 방안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근로기준법 법체계와 충돌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따라서 기본법 제정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대안이 아니라 노동관계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퇴행적 방안으로 악용될 수 있다.

넷째, 사용자의 책임·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간접고용을 오·남용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에게 합당한 책임·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 당선자는 도급-파견 구분을 법제화하는 것이 시장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이라며 찬성하지만,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불법파견 판정시 최초 사용일부터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 방식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윤 당선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단체협약 효력 확장과 원·하청 공동교섭 의무화에 대해서도 반대하지만, 상대적으로 노동의 개입 수준이 낮은 원·하청 공동노사협의회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윤 당선자는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정의 확대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적 정책 대안들은 반대하지만, 비정규직 고용불안정수당 지급, 차별시정 신청권자 범위 확대, 도급-파견 구분 법제화를 통한 위장도급 방지, 위험의 외주화 금지 확대 등 비정규직 차별처우를 완화하고 비정규직 사용 인센티브를 축소하는 접근법에는 찬성한다.

또한 윤 당선자는 노사 간 이해관계 충돌이나 사용자의 심각한 저항 없이 노동자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노동자 보호 정책도 찬성하는데,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 전 국민 상병수당 도입, 근로장려세제 대상과 지원금액 확대, 부모의 육아휴직 기간의 확대 정책 등이 좋은 예다.

윤 당선자가 제안하고 지지하는 친노동 정책들은 함께 경쟁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찬성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윤주도 성장 전략이 올리는 어두운 시대의 서막

윤 당선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고 주 120시간의 노동시간도 허용하고, 최저임금 미만 임금을 허용하는 최저임금제의 차별적용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극단적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도 강경하게 주장해 왔다. 이뿐 아니라 윤 당선자는 민주노총을 강성노조로 지칭하며 강경한 친자본 노사관계 정책 의지도 표명하고 있다.

윤 당선자는 친노동 정책 대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갈등 가능성을 이유로 법적 강제를 반대하는 반면, 친자본 반노동 정책 대안의 경우 사회적 갈등을 도발하는 강경정책에 대해서도 적극적 의지를 표명한다. 노동정책을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윤주도 성장 전략의 폭주가 예견되고 있다.

물론 자본 등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위한 국가권력의 칼날이 노동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겨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어두운 시대엔 노동이 희망이다. 멀게는 일제강점기 희망의 불씨를 지킨 적색노조들과 해방공간의 전평부터, 작지만 전체 노동계급을 대변하며 시민사회의 공간을 열어 줬던 전노협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촛불의 민주노동운동에 이르기까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