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불과 1%도 안 되는 차이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5%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를 했다. 다른 진보정당 후보들도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 이런 선거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것이기도 하다. 국가공동체의 비전을 둘러싼 논의보다는 ‘정권교체냐 아니냐’는 프레임이 선거를 지배했고, 윤석열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뒤늦은 ‘정치교체론’

선거가 이런 프레임에 갇힌 것은, 기본적으로 촛불정부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 심각해져 가는 불평등과 불안감은 정권 심판 논리로 쉽게 연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막판에 ‘정치교체’와 ‘국민통합’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다당제 구조로의 전환을 포함한 정치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선거운동 초반에 이런 슬로건을 제시하면서, 170석이 넘는 국회의석을 활용해서 입법까지 추진해 나갔다면 프레임을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이런 발표를 했으니, 프레임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고 진정성을 인정받기도 어려웠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역동성은 2030여성들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후보가 낙승할 것 같은 분위기였으나,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측의 ’백래시‘에 분노한 2030여성들이 결집한 것이 초박빙의 선거를 만들었다.

이번 선거는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 그 외 진보정당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을 합치면 50%가 조금 넘는다. 만약 결선투표제가 도입돼 있었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거대 양당 중심의 극명한 진영대립은 선거기간 내내 양당제와 ‘승자독식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피로감을 키웠다. 이런 식의 대통령 선거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질문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그것이 이재명 후보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받아들이고 민주당이 다당제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을 때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받아들였다면,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포함한 개헌 성사 여부는 달라졌을 수 있다. 민주당의 뼈아픈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권교체 프레임 속에서도 ‘집값’이 투표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 서울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5%포인트 가까이 앞섰다. 이뿐만 아니라 강남·서초·송파·용산 등에서는 압도적으로 표를 얻었고 동작·영등포·마포·동대문구 등지에서도 앞섰다.

거대양당 후보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얘기하면서도 부동산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에 맞춰서 개발 공약과 공급확대 공약을 쏟아냈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에 대한 대응프레임이 형성될 만한데,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뼈아픈 진보정당 후보단일화 실패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들의 후보단일화 시도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매우 뼈아픈 지점이다. 선거는 80~90%가 구도라고 한다. 거대 양당 사이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양자구도에 균열을 내려면 연대가 필요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진보정치인이라면 그러한 선거구도를 만들어 낼 책무도 있다. 그러나 그런 구도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선거가 양당구도로 흘러가는 것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어쨌든 윤석열 정권은 탄생했다. 무엇을 기대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오히려 윤석열 당선자가 ‘하겠다’고 약속한 공약 중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울진 산불을 겪으면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데도 원전을 확대하겠다고 한다든지, 사드를 추가배치 하겠다든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든지 하는 공약은 실행하지 않는 것이 윤석열 정권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당선자에게 정치적 현명함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인수위 단계에서 거를 것은 걸러 내고 야당이 된 민주당·소수정당들과 협력해 나가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현재의 법·제도를 보면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야당과의 협력이 필수다. 입법과 예산은 국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선 국면에서 윤석열 당선자가 보여준 언행을 보면 협력이나 협치에 대한 기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 탄생을 보면서 오히려 윤석열 정권 외의 주체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보는 것이 생산적일 듯하다.

민주당은 정치개혁 실현, 진보정당은 연합해야
노동·농민·시민운동, 현장에서 힘 키우자

첫째, 민주당은 여전히 국회의 다수당이다. 2024년 총선까지는 그렇다. 민주당이 당장 해야 할 일은 약속한 대로 정치개혁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의 반대라는 장벽이 놓여 있다. 이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소수정당·시민사회와 연대해서 개헌,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 지방선거제도 개혁 같은 과제들을 풀어 갈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 6·1 지방선거에서 기초지방의원 2인 선거구를 없애고 3인 이상 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하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13개 시·도의 조례를 개정해서라도 반드시 바꿔야 한다. 여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지방의원은 차기 선거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실은 대선 전에 이렇게 해야 했다. 그랬다면 민주당의 정치개혁안이 좀 더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의 후보단일화 실패를 성찰적으로 평가하면서 6·1 지방선거에서부터 연합정치를 통해 거대 양당 중심의 선거구도를 깨뜨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다당제 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소극적인 후보조정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선거연합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이번 지방선거 역시 거대 양당 중심의 선거구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노동운동·농민운동·시민사회운동을 포함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회운동세력들 역시 변해야 한다. 정치제도와 자본·관료·거대 언론·기득권 정치로 연결된 기득권 카르텔을 바꾸지 못하는 상태에서 의제별·이슈별 운동이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또한 자기 의제·이슈를 풀어 가기 위해 섣불리 ‘협치’라는 틀에 휘말린다든지 운동의 핵심이었던 개인이 운동경력을 내세워 기존 구조에 참여하는 것은 내·외부의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그동안 충분히 경험했다. 지금은 현장과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다시 힘을 키워 나갈 때다. 그리고 뿌리가 튼튼한 상태에서 동심원을 그리듯이 연대를 확장해 나갈 시기다.

특히 87년 체제로 표현되는 낡은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이 불평등과 차별, 불안과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기에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같은 주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위기일수록 헌법을 꺼내 읽고 우리가 바라는 헌법은 무엇인지, 우리가 바라는 정치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광범위하게 논의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같은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고민들 속에서 하나하나 점검하고 평가하며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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